용기여사네 아파트에는 매주 목요일에 장이 섭니다. 과일, 채소, 잡곡, 반찬 가게들이 아파트 곳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돈까스와 닭강정 순대와 떡볶이, 족발 등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도 많습니다.
목요일만 되면 아이들과 저는 고민에 빠집니다.
“오늘은 뭐 먹을까?”
“음~~.”
아이들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 맛있는데, 한꺼번에 다 먹지는 못하니까요. 그럴 땐 엄마가 나섭니다.
“그럼, 떡볶이랑 순대 어때?”
“앗싸, 역시 점심엔 떡볶이랑 순대지!”
“누가 사 올래?”
고맙게도 두 녀석이 함께 나가겠다고 합니다. 용기여사는 싱크대 장을 열고 떡볶이를 담아 올 용기(容器)를 꺼냅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떡볶이 가게에서 주는 대로 받아왔습니다. 가게 사장님은 일단 투명 비닐봉지에 떡볶이를 담고, 너무 뜨겁다며 까만 비닐봉지에 한 번 더 담아줍니다. 그러면 집에 오자마자 커다란 그릇에 옮겨 담아 놓고 먹었습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환경호르몬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플라스틱과 비닐에 뜨거운 것을 담으면 환경호르몬이 많이 나온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용기여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습니다. 떡볶이가 잔뜩 묻은 비닐을 재활용할 수 없어서 쓰레기통에 버릴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는데, ‘환경호르몬’이라는 말이 그 불편한 마음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때부터 싱크대 장을 다 뒤졌습니다.
유리로 된 용기는 떨어뜨리면 깨질 것 같았습니다.
스테인리스 용기는 너무 뜨거울 것 같았습니다.
몇 년 전 도넛 가게에서 이벤트로 얻은 실리콘 용기를 발견했습니다. 옳다구나 했습니다. 뚜껑까지 있어서 떡볶이 국물을 흘릴 염려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통에 담아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담아 오라고 신신당부했죠.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또다시 떨리는 맘으로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예전에 어느 떡볶이 가게에 용기(容器)를 가져갔다가, 자기네 가게 전용 용기만 사용해야 한다면서 면박만 잔뜩 주더라고요.
아이들은 웃으며 빨간 통엔 떡볶이를 파란 통엔 순대를 담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린 비닐 쓰레기 걱정이랑 환경호르몬 불안을 덜고서 떡볶이와 순대를 마음껏 먹었습니다. 그다음부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빨간 통 줄까? 파란 통 줄까?”
때론 빨간 통만, 때론 파란 통만 가져갈 때도 있지만, 둘 다 가져갈 때가 제일 많습니다.
얼마 전에 떡볶이를 사러 간 아이들이 종이봉투까지 들고 들어왔습니다.
“이건 뭐야?”
“응, 튀김 먹고 싶어서 같이 샀어요.”
“떡볶이랑 같이 가져오지.”
그렇게 달라고 했더니, 그러면 튀김이 축축해진다면서 종이봉투에 담아주더랍니다. 기름이 밴 종이봉투는 재활용이 안 되니까 조금 안타까웠지만 맛있게 먹었습니다.
잘 먹고도 찜찜한 마음에, 튀김 담을만한 통을 찾아보았습니다. 넓고 둥근 스테인리스 통이 자기도 좀 써달라고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주엔 용기여사가 남편과 둘이 먹으려고 빨간 통을 찾았습니다. 이번엔 순대를 빼고 떡볶이와 튀김을 먹기로 했습니다. 빨간 통과 스테인리스 통을 장바구니에 챙겨 들고 떡볶이 가게로 갔습니다.
떡볶이는 뚜껑까지 잘 덮어 주셔서 장바구니에 쏙 담고, 튀김은 눅눅해질까 봐 뚜껑을 덮지 않고 들고 왔습니다. ‘뜨거우면 어쩌지?’하는 건 기우였습니다. 큰 통에 담아오니 뜨거운 기름에 튀긴 녀석들이지만 손으로 잡는 부분이 하나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맛있게 잘 먹고 그릇은 깨끗하게 닦아 놓았답니다^^
오늘도 ‘슬기로운 용기 생활’ 성공입니다!
*떡볶이와 순대는 실리콘이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환경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해도 괜찮겠죠. 내열 유리도 좋지만 좀 무겁고 떨어지면 깨질 염려가 있죠.
튀김은 아무래도 뜨거운 기름에 튀기니까, 스테인리스 용기가 맘이 편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