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 박연준/ 난다
<<듣는 사람>>은 박연준 시인이 자기의 색깔로 자기의 언어로 39권의 책을 안내하는 글이다. 지금껏 읽었던, 인문학자나 소설가들이 알려주는 ‘책 소개’ 글과 많이 다르다. <<듣는 사람>>이라니.
박연준은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심장을 뛰게 했던 책들을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시, 소설, 수필, 인문학, 철학 분야를 아주 쉬운 글로 넘나 들었다. 책마다 담긴 박연준 시인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에 이끌려 앉은자리에서 수 십 권의 책을 읽어버린 것 같다. 좋은 글, 마음을 싸하게 만드는 글을 필사하면서, 읽고 싶어진 책들이 참 많았다. 시인이 나와 비슷한 느낄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느낌과 다른 감정을 말해 줄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사람은 같기도 다르기도 하다.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말이 있다.
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듣는 것도 참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우쳐 주었다. 조금만 연습하면 책을 읽을 때처럼 다른 이들의 말도 잘 들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모든 책이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작가의 삶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의 행적이 옳지 못하다면 그 글을 읽지 못한다. 서정주의 글이 아무리 뛰어나도 나는 그의 글을 읽을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말기, 징용과 징병을 찬양하며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그의 연설이 떠올라 화가 나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박연준 시인과는 그 지점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나니까 나를 시인에게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안톤 슈낙의 글도 마찬가지다. 그의 처절한 슬픔의 글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차라리 붓을 꺾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히틀러에게 충성한 이의 글이 아무리 좋아도 그 시절의 아픔과 고된 삶들이 떠올라 눈을 둘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헤세와 장자, 로맹 가리, 생텍쥐페리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만나 기쁘고 눈물도 났다. 이태준이라는 문장가의 힘과, 박용래 시인의 주체 못 하는 슬픔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존 버거의 다른 시선과 토베 얀손의 거리를 지키며 공존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꼭 읽어 봐야지!’ 다짐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매력적으로 글을 쓰는 박연준의 시와 <<쓰는 기분>>이라는 또 다른 산문집도 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