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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잠시만요

누구나 별을 바라보며 꿈꿀 수 있기를

『송원섭 신부와 별바라기 이야기』

by 발자꾹


가을비가 지겹도록 내렸다. 추석을 지내고도 하늘은 좀처럼 개지 않았다. 이틀을 더 보내고서야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을 먹고, 이천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께 다녀왔다.

나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주부였던 엄마는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면, 엄마가 없는 집안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저녁이면 엄마는 지쳐 쓰러져 주무시거나, 답답한 세상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린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기 일쑤였다.

나는 흔히 말하는 결손 가정의 아이였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눈길이 싫었고, 슬픔이 배어있는 집안 분위기는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이 다가오면 들뜬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텔레비전 속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곤 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 보듬고 털어냈다고 생각해도, 잊을만하면 불쑥 나타나 사람을 괴롭힌다. 다행히도 따뜻한 남자를 만나 어린 시절의 아픔을 많이 덜어냈지만, 환갑을 바라보는 지금도 때때로 그 시절 상처가 찾아와 내 마음을 흔든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 송원섭 신부의 “별바라기” 이야기를 들었다.

‘별바라기’는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자립지원 공간이다.

지난 9월 중순, 송 신부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신부님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동생이 여럿이라 늘 동생들 기저귀를 갈고 업어 달래며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착한 아들이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던 그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아이를 키우지 않으려고 신부가 되었는데, 오히려 수십 명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며 웃었다. 안쓰러운 맘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웃음을 터뜨렸다.

해성보육원의 아이들은 일곱 살까지 수녀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나 여덟 살부터는 새로운 보육 시설로 옮겨야 한다. 한 번 상처받은 아이들이 또 다른 이별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게다가 어떤 보육원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냉정한 말과 폭력을 가해 아이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고 했다.

그렇게 자란 청소년들이 자립할 나이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에서 일자리와 작은 방을 마련해 준다. 하지만 보육원에서 나온 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향해 “그만하면 됐잖아.”라며 곱지 않은 눈길을 던지곤 한다.

경제적 잣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사랑 대신 눈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세상에 적응하기 어렵다. 한 번의 실수로 일자리를 잃고, 좁은 방에서 외롭고 힘든 날을 보내다, 끝내 삶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늘어간다고 했다. 한 명의 아이라도 세상을 등지지 않도록 붙잡으려 애쓰는 신부님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라며 받았던 냉대와 미묘한 시선들, 그때의 서글픔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그래도 집에 돌아가면 엄마와 형제가 있었다. 대학에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친구들과 비교하며 내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곤 했다.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누가 그들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을까.

끝까지 곁을 지키는 어른, 송원섭 신부

송원섭 신부는 ‘별바라기’를 맡아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날마다 해준다고 했다.

성당 안에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인천 교구 성당들을 찾아다녔지만, 처음에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그러다 산곡동 성당에서 흔쾌히 자리를 내주었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카페 일을 배웠다.

나는 종종 그 카페를 이용했지만, 거기서 일하는 이들이 바로 별바라기 청년들이라는 걸 몰랐다. 그곳 ’아(雅)카페‘에서는 누구나 음료를 마실 수 있고, 값은 각자 낼 수 있는 만큼만 기부함에 넣으면 된다. 돈이 없이도 눈치 보지 않고 쉬어갈 수 있다.

요즘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경력직을 찾는 세상이다. 불우한 환경의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는 너무 멀다. 그래서 송 신부는 직접 편의점을 인수해 자활작업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값을 계산하며 손님을 응대하며 사회를 배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YOD8AZv_6Y&t=1s

“신부님, 보육원에 있는 동생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도와주세요.”

별바라기에서 희망을 얻은 청소년들이 함께 지낸 동생들에게도 사랑과 희망을 나누고 싶어 했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지만, 송신부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들어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배우고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모금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별바라기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송원섭 신부와 별바라기 이야기』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와, 별을 찾는 아이들.

한 명의 아이라도 세상을 등지지 않도록 붙잡으려 애쓰는 신부님.


세상을 포기하려던 아이가 말했다.

“신부님, 저 이제 혼자서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젠 혼자 요리도 해 먹어요.”

별바라기의 진짜 목표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일이라고 송원섭 신부는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과업이 바로 그것이다. 신부님은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곁에서 조용히 힘을 보태고 있다.


아(雅) 카페 실내.

추석이 가까운 어느 일요일, 남편과 아들과 함께 아(雅) 카페를 찾았다. 음료를 주문하고 일하는 청년에게 물었다.

“일은 힘들지 않아요?”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합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어서 괜찮아요. 둘이 같이 일하니까 별로 힘들지 않아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도 망설이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하는 모습이 어른스럽고 멋있었다.


별바라기라는 이름처럼, 아이들이 땅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별을 보며 꿈을 키워갔으면 좋겠다. 그 꿈이 막연한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현실도 녹록지 않으면서 동생들의 꿈도 키워주려는 그들의 모습이 참 크고 아름답다. 그 길을 함께 걷는 송원섭 신부는 참 어른의 모습으로 깊은 울림을 준다.

며칠째 비가 내리다, 하늘이 개고 구름 사이로 둥근달이 떠올랐다.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구름 속에 잠시 가려진 것일 뿐이다. 그 별이 다시 보이는 날이 조금 더 빨리 오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 주시길 바라며 오마이 뉴스에 기고했습니다.

*아이들이 사랑과 믿음을 나누며 함께 살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마련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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