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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과 랑케를 통해 역사를 깊이 바라본 시간

『역사의 역사』유시민

by 발자꾹

바람이 차가워 옷깃을 바짝 세우고 걸었다.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려 겉옷 주머니를 파고들었다. 신발을 벗고 도서관 문을 여니 뜨끈한 기운이 맞아 주었다. 얼었던 몸이 녹으니,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들을 만나러 2층 문화 아지트에 들어섰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손을 들고 활짝 웃으며 맞아 준다.

“만나면 좋은 친구~~”

20년 동안 매주 이렇게 서로를 반겨주니 갈수록 정이 깊어진다. 커피 향이 기분 좋게 흐르고, 탁자 위에는 빵과 초콜릿이 놓여있다. 오늘도 누군가의 나눔으로 모임이 더 푸근해진다.

지난 목요일 내린 눈으로 도로가 막혀 한 시간도 넘게 고생했다는 얘기에는 안타까워하고, 주말 김장을 전과는 달리 온 가족이 함께해서 뿌듯하고 힘든 줄 몰랐다는 얘기에는 박수를 보냈다. 한 친구가 남편과 일본 여행길에 올랐다가, 공항에서 가방이 바뀌어 하루 종일 고생했다고 말했다. 공항과 호텔 직원의 늑장 대응에 하루를 그냥 날려버렸다니, 다들 자기 일인 것처럼 화내고 속상해했다. 여행담을 듣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쉽지만 서둘러 이야기를 마치고 오늘의 책을 펼쳤다.



역사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한 시간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역사의 역사』 두 번째 시간이다. 우리에게 너무도 낯선 이슬람의 역사가 이븐 할둔을 먼저 만났다.

이븐 할둔(1332~1406)은 역사가의 책무를 깊이 통감한 사람이었다. 역사가란 과거의 기록을 옮겨 적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고 대조해서 비판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서사를 중시한 헤로도토스와 고증을 중시한 투키디데스의 장점을 합친 위대한 역사가’였다. 그런 그가 19세기가 되어서야 서구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게다가 같은 아시아 권역에 속해있으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븐 할둔은 비판의 눈으로 과거의 역사를 보고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의 책 『역사서설』은 유일신 알라와 무함마드에 대한 찬양과 찬송으로 시작한다. 유시민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국어 번역본에는 한 번만 나오지만, 원문에는 매번 새 장이 시작될 때마다 기도문이 붙는다. 종교와 정치가 하나인 이슬람 세계에서 겪었을 그의 고뇌가 깊이 느껴졌다.

우리는 책 속에서 그동안 많이 헷갈렸던 ‘아랍’과 ‘이슬람’의 차이를 배웠다. 아랍은 언어와 문화, 민족의 개념이고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창시한 종교다. 아랍 국가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대부분에 퍼져 있으며 모두 이슬람 국가인 것도 아니다. 또한 이슬람은 아랍 세계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터키, 이란까지 널리 퍼져 있다. 우리에겐 여전히 멀게 느껴지지만, 서구 유럽에 의해 아시아권으로 묶여 있는 그들이 더 궁금해졌다. 내년에는 ‘이슬람 문화’를 좀 더 공부하기로 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븐 할둔의 사상과 중국 맹자의 ‘왕도정치’를 비교하며, 두 문명이 만나지 않았는데도 너무도 닮아 있다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우리는 작가의 생각에 선뜻 동의할 수 없었다. 실크로드를 통한 다양한 교류, 그리고 원나라에서 서열 2순위 자리에 오른 색목인(아라비아인)만 생각해도 작가가 말한 “만나지 않았다”라는 표현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만나지 않은 걸까?”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한참을 왈가왈부하다, AI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당시 중국과 이슬람 세계는 다양한 교류가 있었지만, 지식인들이 사유를 나눌 만큼 깊지 않았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언제든 유시민 작가를 직접 만나 그 의미를 꼭 물어보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랑케로 넘어갔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 중에 가장 지루했다고들 말했다.

레오폴트 폰 랑케(1795~1886)평민 출신으로 황제 앞에서 강의하고 귀족 작위를 받은 비범한 인물이자, 모국어 독일어는 물론이고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까지 통달한 언어 천재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나라에서 국민 주권이 싹트고 공화정이 자리 잡아 가는데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왕과 귀족에게 의탁했다. 그는 그저 낡은 문헌에 빠져 시대정신이 없어 보였다.

랑케는 말했다.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겠다.”


언뜻 들으면 멋진 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에는 첨단 기기가 넘치지만, 개인의 하루조차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역사(History)란 이미 승리한 자들이 남긴 자료가 대부분이다. 자료 자체가 기울어져 있는데, 어떻게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너무 오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랑케를 얘기하는 내내 비판 일색이었는데, 누군가 한 구절을 말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학 기술과 물질의 힘은 진보하지만 인간 정신은 진보하지 않는다.


한 친구가 공감한다고 말했다. 계급사회는 사라졌지만 자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생겼고, 인간의 탐욕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른 친구가 반대했다. 과거에는 수많은 사람이 순응하고 살았지만,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의 4·19 혁명, 87년 민주화 운동 그리고 촛불 혁명까지 더디기는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느냐’라는 주장과 ‘아니다, 과거를 밑거름 삼아 시민이 깨어났기에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다’라며 한참 동안 공방이 이어졌다. 서로 의견이 팽팽해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증거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했다.


역사는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

우리는 오늘 이븐 할둔과 랑케를 통해 역사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달았다. 역사가는 과거의 기록을 그대로 후대에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고려하고 다른 자료와 비교 분석해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사람이다.

역사는 유시민 작가가 말했듯이 “언어의 그물로 길어 올린 과거”일뿐이다. 얼마나 촘촘한 그물로 어떤 역사를 담을지 고민하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다. 우리는 그 그물에 담긴 역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다음 시간에는 19세기와 20세기를 뒤흔든 카를 마르크스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읽어 내려고 애쓴 신채호와 박은식 백남운 선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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