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끝내며
3월 첫 번째 모임이다. 우수도 지나 포근한 나날이 계속되다 어제 종일 내린 비로 스산해졌다. 살짝 우울해진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고 도서관 2층 문화아지트 문을 연 순간 활짝 웃으며 맞는 그녀들을 보고 나도 따라 웃었다. 역시 만나면 좋은 친구들이다.
귀촌을 꿈꾸다 곡성 땅에서 일 년 살이 하는 그녀가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왔다. 보름이라고 찰떡을 해왔다. 목회 활동하느라 여념이 없던 그녀도 뻥튀기를 사 들고 왔다. 그냥 와도 되는데 라며 모두 웃으며 반겼다. 아주 오랜만에 화요일의 그녀들이 완전체로 뭉쳤다. 사람이 가득 찬 만큼 갖가지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요즘 흥행에 성공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유해진의 찰진 연기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고들 했다.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을 색다른 각도로 바로 본 것도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런데 영화가 인기를 끌자, 단종 앓이로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웃지 못할 소식도 함께 나누었다. 단종이 귀양 살았던 영월에 관광객이 들끓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한명회의 무덤과 세조의 묘 광릉이 욕으로 도배가 되었다는 소식은 씁쓸했다.
단종의 비극이 수 백 년 전 조선 왕조에서 벌어진 일이고 국사 시간에 분명히 배웠을 텐데 난생처음 듣는 비극인양 광풍이 인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의 힘이 크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렇게라도 젊은 세대가 역사에 관심을 가져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끓는 광풍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두 달 동안 함께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12장 「은하 대백과사전」에서는 외계 문명과 어떻게든 닿고자 하는 인간의 절실한 노력이 담겨있다. 인류는 1974년 11월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아레시보 전파 천문대에서 처음으로 M13 구상 성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단순한 기호와 점선으로 이어진 메시지에는 인류의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우주에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과학자들은 얼마나 들떴을까? 우리가 보낸 정보를 그들은 읽어낼까? 우리와 같은 고등 생물이 우리 은하에 존재하기를 바랐지만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
우리 인류는 기원전 이집트에 새겨진 로제타석의 비문을 해독하는 데 2,00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의 언어 천재 샹폴리옹이 없었다면 세 가지 언어로 새겨져 있지 않았더라면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고 탁본을 떠 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칼 세이건은 우주에 보낸 성간 메시지를 얘기하며 어쩌면 우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정보가 담긴 <우주 대백과사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로제타석을 해독한 것처럼 언젠가는 그 많은 정보를 해독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칼 세이건은 끊임없이 외계 생명체를 만나고 싶어 한다. UFO. 우리가 그동안 품어온 외계인에 대한 불안과 환상은 우리 인간이 함께 평화를 꿈꾸며 살기보다 침략하고 자신의 세를 넓혀가며 살아왔던 과거의 역사 때문이 아닐까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는 우리에게 손을 뻗는 외계인이라면 침략자가 아니라 공존의 힘을 믿는 다정한 이들이라고 믿는다. 우리도 그런 이들과 정보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의미로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책 속에 등장하는 루이 16세가 보낸 태평양 원정대에 눈길이 갔다. 왕은 원정대를 보내며 평화적으로 교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정대는 남미 원주민들과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교류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그저 사치스럽고 무능력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루이 16세가 다시 보였다. 누군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 관련 전시회를 한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짙게 끼워졌던 렌즈를 벗고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하면서 다들 생각이 많은 얼굴을 했다.
이제 마지막 13장이다.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13장은 1장부터 12장까지 저자가 펼쳐놓은 수많은 이야기를 정리해서 담아 놓았다.
칼 세이건은 우주에 관심이 많은 과학자다. 우리 인간은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미미한 존재라고 하면서 서로 침범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의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서로의 것을 뺏지 못해 안달 난 마음을 우주로 돌려 함께 나가자고 한다. 선진 문명을 받아들여 지구를 지키고 평화롭고 조화롭게 함께 살자고 한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게 총과 칼, 핵무기를 겨누던 냉전 시기였으니 칼 세이건의 외침은 절절했으리라. 냉전 시대는 사라졌지만, 지구상의 힘 있는 자들은 더 견고한 성을 쌓으며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 눈치도 보지 않고 걸림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전쟁을 일으킨다. 칼 세이건의 경고를 읽는 도중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폭격을 퍼부어 전쟁을 벌였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위험해진다며 악독한 지도자를 몰아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폭격으로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이들 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 말했다. 어차피 우리 삶은 끝이 있고 우리가 영원을 두고 맹세하는 태양도 그 힘을 잃으면 태양계는 사라진다. 우리가 화성이든 목성이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도 결국 우리는 태양과 함께 사라질 존재다. 현재 각국에서 벌이는 무기 산업도 우주로 나서려는 움직임도 칼 세이건이 말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기는 도긴개긴이다. 차라리 그 힘과 돈과 노력을 기후변화로 줄어드는 오존층을 보호하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면 우리가 더 나은 삶을 함께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칼 세이건은 말한다. 누가 우리를 대변해 주고 누가 우리를 지켜줄 것인가? 우주의 푸른 점에 사는 개미보다 작은 인간들이여 아등바등 살지 말자. 우주는 무궁무진하다. 조화롭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배우자.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675쪽
이 말이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누군가는 말했지 않은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너무 늦기 전에 서로 손잡고 함께 가야지 않을까?
드디어 두 달간의 여정이 끝났다. 돌아가며 가장 마음에 와닿았거나 재미있었던 장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도입부에서 우리 인간이 작디작은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 인상적이라 했다. 누군가는 지동설의 등장 케플러가 등장하는 3장 「지상과 천사의 하모니」가 흥미로웠다고 했다. 4장 「천국과 지옥」을 통해 우리가 천국에 살고 있음을 우리 지구를 더 아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7장 「밤하늘의 등뼈」에 등장하는 이오니아의 자연과학자들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11장 「미래로 띄운 편지」에서 보이저호에 승선한 레코드판에 담긴 수많은 정보가 흥미로웠으며 스스로 바다로 간 거대한 동물 고래들이 신령스럽다고 했다. 13장 「누가 우리를 대변해 줄까?」는 칼 세이건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정리해 주는 것 같아 오래 남을 것 같다고 했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다른 말이 아니었음을 일깨워 준 칼 세이건에게 감사하며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책을 함께한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화요일에 그녀들> 첫 번째 이야기 모음이 끝났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고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잠깐 쉬고 돌아올게요. 벌써 그녀들의 수다가 그립다고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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