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범대학을 나왔다. 사범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왜 선생님이 되지 않았어요?"라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사범대학을 졸업했다고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면, 나는 진작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겠지.
"저는 선생님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 된 거예요." 교사의 꿈을 내려놓은지 십몇년이 지났는데도 이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실패자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사를 딱 한번 보았다. 그리고 영점 몇 점 차이로 떨어졌다. 임용고사는 실력이 다들 비등비등하기 때문에 큰 점수 차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영점 몇 점이라는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운도 무시할 수 없다.
일 년에 딱 한번뿐인 시험, 시험을 몇 달 앞두고 발표되는 TO. 국영수가 아닌 내 전공은 TO가 0인 지역도 있다.
'또다시 1년 동안 나를 갈아 넣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우리 과목을 몇 명이나 뽑을까? 또 떨어지면 그땐 어떡하지?' 머리가 복잡했다.
몇 년째 공부만 파는 사람들.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 또는 교사라는 꿈을 놓지 못해서.. 올 해만, 올 해만 하다가 몇 년을 수험생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 희망보다 우울이 더 큰 사람들. 나도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나는 부정적인 미래를 상상하며 겁에 질리곤 했다. 나에 대한 믿음도 간절함도 없던 나는, 거기서 그만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시험을 포기하고 내가 선택한 것은 결혼과 육아였고, 지금 나는 "어쩌다 보니 아줌마"로 살고 있다.
내가 즐겨 보는 웹툰에 공무원 시험을 몇 년째 공부하다가 포기한 사람이 나온다.
그녀는 친구에게
"나는 나의 오늘도, 나의 내일도 생각하면 너무 앞이 캄캄해서, 그래서 날 온전히 마주 보는 게 끔찍하더라고. 내가 내 이십 대를 망쳐 버렸다는 죄책감에.. 사실은, 사실은 나도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었어. 그래서, 난 그래서 쭈욱 '잘' 살지 못하는 '나'를 경멸했던 거야...'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놓으니까 편해지더라. 그래서 그냥~ '그냥' 살기로 했어. 모호한 불행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사소한 농담들로 웃으면서 살래, 어이없고 사소한 것들로 그냥 그렇게....."라고 말한다.
- 아홉수 우리들, 수박양
그때 나도 겁이 났었다. 나의 남은 20대를 망칠까 봐.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으며 버텨야 할 수험 생활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그래서 나도 그녀처럼 '모호한 불행들을 두려워하기보다 사소한 농담들로 웃으면서 살기'로 결정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40대가 되어 보니 그때 내 선택이, 나를 눈물짓게 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시간을 한숨과 아쉬움으로 보내게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나의 선택은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보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편익이 크므로 합리적인 선택이다."라고 나도 당당히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