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존스 Jun 25. 2021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너에게

  갑자기 신랑의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봤어.


  한달은 어찌어찌 버티더라도 그 시간이 길어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다.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은 정해져 있고 아무리 줄이고 아낀다고 해도 먹고는 살아야하니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닐거야.

  너는 코로나 때문에 일을 잃었어. 그게 벌써 1년 6개월이 되어가네.

  몇년 전 싸드(THAAD) 때문에 일을 못할 때, 너는 나에게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하며 조언을 구했었지.

  나는 네가 네 일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버텨보라고 했어. 너는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대신, 동네 마트에서 배달일을 시작했지. 아파트가 없는 이 동네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도 많았고 배달일을 하는 몇개월 동안 살이 쪽 빠진 네가 안쓰럽기도 했어.

  그 때 너에게 제대로 된 다른 일을 찾으라고 조언해줬더라면.. 다시 이런 불안과 걱정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우리 어렸을 때 말이야.. 9남매의 맏이인 아빠 덕분에 늘 많은 가족들에 둘러 쌓여 살았잖아. 심심할 날이 없었지.

너는 현수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사촌형과 사촌 누나, 동생들과 함께, 우리 어릴 때처럼 많은 가족들 사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자라기를 바랬어. 너 또한 오랜 타향 살이에 지치기도 했을꺼야.

  가족이 그리운 그 마음 하나 때문에, 너는 아이가 생기자 마자, 중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할 결심을 했지. 중국에서 자리를 잡아 아파트도 사고 어느 정도 여유있게 살만한 때였지만 말이야.

  한국에 들어와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던 너는 [중국관광가이드] 공부를 시작했어.공부랑 거리가 멀었던 네가 도서관을 다니고 온라인 강의도 들으며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 어려운 시험에 바로 합격하는걸 보고 네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어.

  매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우리나라의 곳곳을 데리고 다니며 구경 시켜주는 일은,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너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어. 큰 돈을 벌지 못해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즐기며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기에 가족들 모두 감사해했지.

  그런데 싸드 문제가 터지고, 코로나가 터지고.. 너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어. 너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말이야. 나도 신랑의 실직으로 어려웠던 때가 있고, 언니도 형부의 사업이 부진해서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지만, 그 시간들은 그리 길지 않았기에 네가 이 힘든 시기를 어떤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는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걷고 있는 너에게 아무 도움이 될 수 없어서 미안해. 아쉬운 소리 한번 정도는 할 법도 한데, 부모님한테나 누나들한테 한번도 힘들다는 소리 안하고 버티는 네가 대견하고 고맙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줘.

  신랑이 따박따박 벌어다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나는 늘 '내 존재'와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하는데, 네 마음은 오죽하겠니?

  우리가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유기농 음식을 먹이고, 비싼 학원을 보내주지는 못하겠지만 아이들은 우리에게서 비싼 학원에서 배우지 못하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가족의 가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의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굳센 마음. 그리고 긴 시간을 버티는 동안에도 우울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말이야.

  너를 완전히 이해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 것은 아니지만, 누나는 지금을 버티고 있는 네가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 네 삶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힘내라, 동생아!

매거진의 이전글 그곳에서 안녕하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