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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Jun 25. 2021

그곳에서 안녕하시나요?

  그녀는 어린 시절 내가 만났던 어른 중에서 가장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는 늘 화가 많은 사람이었고, 훈육을 목적으로 자식을 때리고 욕하는 것에 스스럼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우리 엄마도 그녀 같았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았다.




  서글 서글하고 잘생긴 외모의 셋째 삼촌은 20살 때, 2살 연상의 그녀를 만나 일찌감치 가정을 꾸렸다. 삼촌은 작은 사진관을, 그녀는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며 알콩 달콩 살았다. 삼촌 부부에게는 나랑 동갑인 큰 딸과 내 남동생과 동갑인 작은 딸이 있었다. 친구 같은 아빠와 마음이 여린 엄마를 가진 두 자매를 나는 부러워했다.


  작은 집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고, 나이가 비슷한 사촌들이 있었기에 언니와 나는 버스를 타고 작은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어떤 날은 신나게 놀다가 집에 갈 시간을 놓쳐, 못 이기는 척 작은 집에서 자기도 했다. 언니와 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화장실 문 앞에는 좋은 냄새가 나는 깨끗한 수건과  곱게 개어진 속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자기 집에 온 어린 손님을 정중하게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기억은 오래오래 내 마음 속에 남아, 지금도 가끔 그녀를 떠올릴 때면 화장실 문 앞에 놓여 있던 보송한 수건의 촉감과 향기가 살아 나는 듯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작은 아빠가 운영하는 사진관으로 가족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있다. 엄마가 집에서 아무렇게나 자른 나의 단발머리는 오른쪽이 오리 꽁지 마냥 하늘로 과하게 뻗혀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자기 무릎 앞에 앉히고, 드라이기와 롤 빗을 꺼내어 오랫동안,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말아 주었다. 나는 그 손길이 마냥 좋아 가슴이 설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계속 뻗치는 내 머리카락 때문에 그녀가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찍은 사진 속의 내 머리는 여전히 뻗혀있다. 우리 가족사진 속에 그녀는 없지만, 나는 사진 속 머리카락으로 그녀를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죽음이다. 지금도 나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죽음'은 낯설고도 갑작스럽게 나를 찾아왔다.


  뱃속에 그리도 원하던 아들을 품고 있던 그녀가, 그렇게 떠났다. 의료사고였다. 그녀는 몸에서 2/3의 피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방치된 채 죽어갔다. 갓 태어난 아기가 아까워서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그녀가 떠난 뒤 나는 일주일을 내내 울었던 것 같다. 생때같은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떠난 그녀가 불쌍해서 울고,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아기가 가여워서 울었다.  아내를 잃은 작은 아빠가, 엄마를 잃은 사촌 자매들이 안타까워서 울었다. 그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엄마를 잃은 한 가족이 어떻게 고통받고 무너지는 지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얼마 전 작은 아빠가 그녀의 곁으로 가셨다. 간암이었다. 엄마는 그녀가 살아 있었더라면, 작은 아빠도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부모를 모두 보낸 사촌 언니와, 사촌 동생들은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 가슴을 움켜쥐며 오열했다. 작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14살이었던 나는,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염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첫 죽음을 경험한 이후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외할머니, 큰 고모, 사촌 오빠, 큰 외삼촌, 큰 외숙모, 작은 외삼촌..... 많은 가족들이 각자의 이유로 하늘로 돌아갔다. 나는 죽음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이라면... 나는 남겨진 사람으로서 그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싶다. 내 그리움이 깊어져, 마음이 쓰릴 때면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오늘처럼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며 "다정했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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