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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Jun 29. 2021

마녀를 잡아라!

나의 정체는 무엇?

  로알드 달의 「마녀를 잡아라」에서는 마녀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손을 보라고 한다. 마녀는 손이 온통 쭈글쭈글한 데다가 손톱이 갈고리 모양으로 뾰족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사는 마녀들은 이를 감추기 위해 언제나 장갑을 끼고 다닌다.


  만약에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는 여자가 주변에 있다면, 한 번쯤 마녀라고 의심을 해 보시라.



  손톱만 뾰족하게 기르지 않았다 뿐이지, 내 손도 마녀 손처럼 쭈글쭈글 주름이 많다. 몸과 얼굴은 꾸준한 관리와 의학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세월의 힘을 비껴갈 수 있지만, 손과 목은 제 나이를 감출 수 없다고들 한다. 나이 든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어떠했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으니, 손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 주는 자서전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예전에 한국 무용의 대가인 국모 선생의 외손녀 집으로 수업을 하러 다닌 적이 있다. 그 아이의 외할머니는 화가였는데 나이에 비해 곱고 세련되신 분이었다. 평생 힘든 일은 안 해보셨을 것 같다. 아이의 외할머니는 처음에 나를 봤을 때 "어딜 봐서 애들 엄마야~~, 왜 이렇게 젊어~~"라고 말씀하시더니만, 내가 수업하는걸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시더니 "손을 보니 애 엄마 맞네~"라며 뼈 때리는 말씀을 하셨다.

   내 손은 타고나기도 못생겼지만, 주부로 14년을 살다 보니 못난이 중 상 못난이가 되어 버렸다. 손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라 아이들 어릴 때는 손빨래를 자주 했고, 깔끔한 것을 좋아해 집안 구석구석 열심히 문지르고 닦았다. 손을 쓰는 일을 할 때 손 끝이 둔한 것이 싫어 고무장갑도 잘 끼지 않았다. 성격도 무지 급해 뭐든 빨리빨리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조심성 없이 일을 하다 다치기도 많이 다쳤다.


  취미로 자전거를 시작하면서 내 손은 제2의 수난기를 맞이했다. 햇볕에 타서 시커먼 손등. 여기저기 박힌 굳은살. 때로는 손톱 주변에 까만 기름때까지 묻어 있다. 손만 보여주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맞춰보라 하면 열에 아홉은 '남자'라고 할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작년 3월에 자전거를 타다가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엄지 손가락 인대를 다쳤다. 손가락 보호대를 끼고 인대가 나을 때까지 손을 아꼈어야 하는데, 그 걸 못 참아서 일주일 만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안일도 했다.

  그냥저냥 지낼만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 뼈가 점점 튀어나오고 저릿저릿한 통증이 계속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손상된 채로 굳어져 , 뼈 모양까지 변형되었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평생 이렇게 뼈가 튀어나온 채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다.


   나의 병명은 '외상성 관절염'. 내 나이 40에 벌써 관절염진단을 받다니! 흰머리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우울했다.


  엄마는 보기 싫게 뼈가 튀어나온 내 손을 보시더니, 나 보다 더 속상해하셨다. 본인의 손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못생긴 딸의 손이 안쓰러우셨나 보다.


  

  우리 엄마의 손은 '후천적 마녀 손'이다. 나처럼 날 때부터 못생긴 '선천적 마녀 손'이 아니다. 엄마의 체형을 닮은 여동생의 예쁜 손으로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엄마의 손은 아마도 무척 고왔을 것이다.

  엄마는 처녀 적에는 남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미싱사 일을 하셨고, 결혼해서는 9남매의 맏이와 4남매의 엄마로 평생을 다. 연세드셔서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생긴 류머티즘과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이런 내막을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우리 엄마의 손을 보면 엄마의 삶이 고되고 거칠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내 못생긴 손이 부끄러운데 엄마는 엄마의 손을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관절염 때문에 찾아 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엄마 손을 보고 깜짝 놀라며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나 보네요."라고 말했을 때, 엄마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의 손은 '엄마의 삶' 자체이고, 우리 엄마는 언제나 삶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도 내 손 못생겼다고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겠다. 부끄럽다고 감추지도 말아야겠다. 내 아이의 작고 따뜻한 손을 사랑하듯, 그 손을 잡고 있는 투박하고 거친 내 손도 사랑해야겠다. 는 인간과 어울려 살기 위해 손을 숨겨야 하는 마녀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손을 내어 놓은 위대한 엄마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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