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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Jul 11. 2021

어린이가 존중받는 세계를 꿈꾸며

어린아라는 세계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 김소영, 「 어린이라는 세계 」 중에서.




   어느 날 어린이도서관에서 하는 모임에 갔다가 헬린이, 등린이, 요린이, 주린이 등에 붙여서 사용하는 신조어 '~린이'라는 표현이, 장애인을 빗대어 이르는 'OO장애'라는 표현처럼 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는 '결정장애'라는 단어를 다루며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라고 설명합니다.


  '~린이'라는 표현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동안 무심하게 써 왔던 이 신조어는 어린이를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로 규정하며, 어른이 자신의 미숙함을 어린이에 빗대어 표현하는 말입니다. 저는 자전거를 시작한 뒤 '자린이'라는 말을 알게 되었고, 무의식적으로 이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를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린이'라는 말을 써왔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그만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지요.


  문제의식을 느낀 저는 주위에 자전거 타는 친구들에게 국제아동인권센터의 <한글 속 아동 인권 찾기>라는 기사를 공유하며, 「자린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가 미숙하고 부족한 게 당연한 거지 그게 비정상은 아닌 건데 그걸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네가 이상하다."라며 저를 비난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 봅니다.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그 표현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다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체할 만한 다른 표현을 써도 되지 않을까요? 「초보자」, 또는 「입문자」라는 표준어가 있는데 말이죠.



  

  어린이는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방법을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몸에 익지 않아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저도 완벽한 어른이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사람과 의식조차 못하고 있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이 존중받아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날, 이제 겨우 11살밖에 안 된 작은 아들의 친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서럽게 우는 거예요. 울음이 진정된 후에 그 아이에게 왜 울었냐고 물었더니 "사는 게,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요.."라고 대답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벌써부터 삶의 힘듦을 알아야 하는 걸까요?


  상처 받은 아이들이 좋은 어른을 만나고 사회에서 존중받는 경험을 통해, 이 세상이 살아갈만하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상처를 치유하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역할을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명 한 명이 모두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으면 겠어요

 

  저는 최근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보육교사 자격증을 딸 때, 사회복지 전공을 같이 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어요. '사회복지'라는 것이 저에겐 너무 어려웠거든요. 학점을 이수하고 머리에 담기만 하고 내 삶에서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사회의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부분을 마주할 자신도,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줄 준비도 되지 않았어요.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최근에 깨달은 사실은, 준비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준비되길 기다리다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도요. 그래서 뭐든지 시작해보자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게나마 손을 얹어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한 발짝도 떼지 않는다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요. 여러분도 주위를 둘러보세요. 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손을 내밀어 보세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도, 여러분도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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