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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Aug 24. 2021

까다로운 그대를 사랑으로 키우는 법

   결혼하고 2달 만에 임신을 했다. 내 몸은 임신과 동시에 엄청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제일 큰 변화는 체중의 증가였다. 숨만 쉬어도,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것 같았다. 임신 전 53kg이었던 몸무게가 막달에는 78kg이 되었다. 붓기로 얼굴과 발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고 코는 주먹만 해졌다. 신랑은 커다란 배를 내밀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걷는 나를 ‘펭귄맨' 같다고 놀렸다. 신랑과 같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신랑을 보고 '남동생'이냐고 묻기도 했다. 신랑은 나보다 5살이 많았다. 뚱뚱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임신부. 그게 바로 나였다.


   예정일을 2~3주 앞둔 날이었다. 가족 행사 때문에 뷔페에 갔는데 음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식중독에 걸리고 말았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피부는 간지럽다 못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식중독으로 인한 두드러기를 약도 안 먹고 생으로 참으려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잠도 잘 수 없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쐬면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아 어두운 밤길을 배회했다. 그때는 왜 그리 무식했는지, 임신 중에는 절대 약을 먹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병원에 가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출산 예정일이 지났지만, 아기는 소식이 없었다. 예정일에서 일주일 후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기로 했다. 르봐이예 분만을 한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병원이었는데 실제 분만 과정은 르봐이예 분만이 아니었다.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출산 과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갓 태어난 아기도 예쁘지 않았다. 퉁퉁 부은 푸르스름한 얼굴에는 태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누구를 닮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그저 낯설기만 했다.


   그렇게 태어난 나의 첫 아이는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젖꼭지를 잘 물지 못했고 분유 수유도 거부했다. 배를 채우지 못한 아기는 한 시간마다 한 번씩 깨서 울었다. 한번 울음이 터지면 쉽게 그치지도 않았다. 나는 매일 밤 벽에 등을 기댄 채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리고 선잠을 자곤 했다. 아기가 첫돌이 되어 젖을 완전히 떼고 나서야 ‘4시간 만이라도 깨지 않고 자고 싶다’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못했다. 내가 낳았음에도, 그 아이가 나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같았다. ‘엄마’라는 의무감으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 주었으나, 때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울화를 주체하지 못해 아이를 밀어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가시덩굴처럼 뻗어 나와 내 온몸을 찔렀다.


   아이는 주양육자인 나와의 불안정한 애착 때문에 긴장과 불안이 높았다. 아이가 5살 되던 해,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코를 찡긋거리기도 했다. 강아지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나에게 크게 야단을 맞았던 날, 아이는 입과 코를 심하게 움찔거렸다. 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아이의 틱은 나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아이는 작은 일에 크게 화를 냈고, 한번 화가 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폭발하곤 했다. 선생님이 묘사하는 아이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못난 엄마 때문에 내 아이의 마음은 썩고 곪아서 시들어가고 있었다. 우리에겐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나는 변명 같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임신과 출산 과정이 힘들었다고,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예민하고 까다로웠다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이다. 지금 아이가 겪고 있는 문제가 모두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의사 선생님은 사람의 '기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기질을 타고나는데, 타고난 기질은 쉽게 바꿀 수 없어요. 환경적인 영향도 있긴 하지만 타고난 기질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이 스님이 되어 절에 들어가 몇십 년 수행한다고 해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욱하는 성질을 내보이게 되기도 하죠. 부모가 아이의 기질을 바꿀 수는 없어요. 부모로서 우리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이의 기질을 잘 파악해서 좋은 기질은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쁜 기질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기질을 바꿀 수 없다는 말', '환경적인 영향보다 타고난 기질의 영향이 크다는 말'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말보다 그 뒤에 따라오는 '부모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내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까다로운 기질을 탓하며 아이를 원망하기에 바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를 심하게 혼내고 야단쳤던 나를 끊임없이 리플레이하며 스스로 상처를 내고 있었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워할 시간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모성애'는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되면, 저절로 모성애가 생기고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게 된다고 믿는다. 옛날에 나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매일매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기질을 타고났든, 아이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 사랑이 저절로 우러나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사랑의 씨앗을 마음에 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날마다 정성을 들여 가꿔야 한다.


   아직도 나는 아이들이 내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씩씩거린다. 수용적이기보다 지시적이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시간보다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이 많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기적처럼 좋은 엄마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루 한 번 내 마음의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제 중학생이 된 커다란 아들을 끌어안고 볼에 진하게 입을 맞춘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매일매일 내 마음에 심은 사랑의 씨앗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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