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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Dec 02. 2021

12월의 첫날, 교문 앞에서.

  12월의 첫날. 겨울을 알리는 비가 내린 다음 날이라 그런지 기온은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거셌다. 아침잠이 많은 희찬이를 어거지로 이불 속에서 끌어내 밥을 먹이고 학교 보낼 채비를 했다. 4학년이지만 늦되고 주의력이 부족한 희찬이는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다. 현관문을 열자 찬바람이 훅 들어온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등굣길에 나서는 아이가 짠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희찬아, 엄마가 이따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갈까?”

 “응!”

 “그럼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알았지? 먼저 내려오지 말고 꼭 기다려야 해”

 4학년이지만 휴대폰이 아직 없는 데다, 약속 없이 데리러 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 기억이 있어 기다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이를 보내고 「작은 도서관 놀자」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여하였다. 12시에 끝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회의가 길어지다 보니 12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는 말에 거절을 못 하고 선생님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희찬이가 1시 10분에 끝나니 1시 15분까지는 교문 앞에 도착해야 했다.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일부러 가까운 식당으로 갔는데, 금방 나올 줄 알았던 식사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괜히 데리러 간다고 말했나 봐. 시간이 빠듯하네. 날씨도 생각보다 춥지 않은데 내가 왜 데리러 간다고 그랬지?’


  먼저 내려오지 말고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신신당부까지 해 놨으니, 내가 늦으면 추운데 찬바람 맞으며 나를 기다릴 것이 분명했다. 밥을 먹다가 중간에 일어서게 될까 봐 아침에 데리러 간다고 말한 것이 후회되었다.


  음식이 나왔으나, 하필이면 내가 고른 메뉴는 뜨거운 도가니탕이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뜨거운 도가니탕을 뜨거운 줄도 모르고 서둘러 먹었다. 1시 15분. 아이고 늦었다. 서둘러 올라가야 한다. 희찬이가 다니는 학교는 아차산 입구에 있다.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쉬지 않고 올랐다. 발 빠른 아이들은 벌써 저만치서 내려오고 있었다. 1시 20분. 교문 앞에 도착했다. 희찬이는 아직 나오지 않았나보다. 다행이었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나왔다. 그중에 희찬이가 있었다. 희찬이는 모자를 푹 뒤집어쓰고 나를 찾는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희찬아! 희찬아! 여기! 엄마 왔어~!”


  희찬이의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니,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 할 뻔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희찬이 옆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오늘처럼 아이가 짠하게 느껴지면, 아이를 꼭 껴 앉고 자고 싶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희찬이가 나에게 뽀뽀를 하려고 다가왔다. 나도 희찬이에게 다가가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

  희찬이는 “엄마, 엄마는 깜깜한데 내가 뽀뽀하는 줄 어떻게 알고 나한테 같이 뽀뽀를 해?”라고 물었다.

“희찬아. 깜깜해도 희찬이가 다가오면 희찬이의 온기가 느껴져. 그리고 희찬이 냄새랑 숨소리도. 그래서 알아. 희찬이도 가만히 있어 봐. 엄마가 다가가 볼게.”

  희찬이의 얼굴 쪽으로 슬며시 다가가 입을 맞추자, 희찬이는 두 팔로 나를 꽉 껴안고 내 목에 얼굴을 파묻으며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였다.

“엄마, 정말 느껴져. 엄마 냄새랑 엄마의 온기가 느껴졌어. 정말 신기해”


  그리고 가만히 내게 얼굴을 기댄 채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다.

“엄마. 미안해..... 사실은 나, 엄마가 나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거 잊어버렸어.....”

“그래? 근데 왜 교문에서 두리번거렸어? 엄마는 희찬이가 엄마 찾는 줄 알았는데?”

“엄마. 나 원래 맨날 그래. 맨날 혹시 엄마가 나 데리러 왔을 까봐 교문에서 엄마를 찾아봐. 그리고 엄마가 없으면 그냥 애들이랑 같이 내려와....”


 ‘너는 오지 않는 엄마를 매일 매일 기다렸구나... 이를 어쩌면 좋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별것 아닌데도, 나는 차마 희찬이에게 ‘엄마가 매일 매일 데리러 가겠다’라고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저 희찬이를 한 번 더 꽉 안아주었을 뿐이다.




  부모 사랑보다 자식 사랑이 더 크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내가 희찬이에게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희찬이에게 받고 살았다. 지금까지 항상 그랬다. 희찬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의 힘으로, 나는 큰아들 희성이도 사랑할 수 있었고 불편한 엄마도 사랑할 수 있었다.


 2,000Km가 넘는 전국의 자전거길을 나와 함께 달려 준 나의 소중한 벗 희찬이는, 내가 뒤돌아보면 항상 나의 바로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찬아. 너도 언젠가 나를 떠나겠지만, 그땐 내가 너의 뒤에서 항상 너를 보고 있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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