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존스 Mar 23. 2022

나의 봄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변했지. 그땐 나희도가 하는 모든 경험들을 응원했어. 평범한 경험일수록 더. 근데 지금은 아니야. 난 걔 시간이 내 시간보다 아까워. 일분일초도 쓸데없는 경험들 안 하게 해 주고 싶어. 더 멋진 경험들만 하게 해 주고 싶어. 그리고 그걸 내가 할 수 있어. 걔가 지금 지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몰라도 돼, 내가 아니까.

   핑크빛, 달달함, 설렘. 이런 말들이 저절로 떠오르는 ‘봄’이 왔다. 요즘 나는 봄이 왔음을,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뭇가지에서 사람들의 가벼운 옷차림에서 느끼지 않는다. 내가 봄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전기장판을 깔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이다.


   어릴 때, 나의 언니는 만화책과 TV 드라마를 무척 좋아했다. 엄마는 언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TV의 전선을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다. 온 가족이 언니를 위해 TV를 포기한 것이다. 물론 간 큰 언니는 엄마, 아빠가 외출하면 전선의 피복을 벗겨 콘센트에 연결해 TV를 보곤 했지만 말이다. 한참 TV를 좋아할 나이에 TV를 멀리하였기 때문인지 나는 그 후로도 TV를 좋아하지 않았다.


   혼수를 준비할 때도 그랬다. 신랑은 커다란 TV를 사고 싶어 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32인치 TV였다. TV는 나에게 ‘구색’일 뿐이었다. 9년 후, 작은 TV를 답답해하는 신랑을 위해 55인치 신형 LED TV를 6개월 할부로 장만을 했다. 하지만 그 TV는 불과 3개월 만에 장난꾸러기 작은아들에 의해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가족들에게 ‘TV 없는 삶’을 선언했다.


   그랬던 내가 요즘 핸드폰과 태블릿을 이용해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청춘 드라마를 보면서 울고 웃으며, 가슴을 두근거리며 설렌다. 어쩌다 드라마를 보게 되면 비현실적인 설정에 화를 내고, 주인공들의 행동에 답답해하며, 남주의 대사에 손발이 오그라들었던 내가 이렇게 드라마를 좋아하게 될 줄이야! 이게 모두 그 빌어먹을 코로나와 자가 격리 덕분이다.



 

  올해, 내 나이 마흔셋. 내 나이는 인생의 계절에서 어디쯤 있는 것일까? 문득 생각해본다. 여름은 확실히 지난 것 같고, 늦여름? 초가을? 확실한 건, 내 인생의 봄은 진즉에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아직도 설레고 싶은 ‘내 마음의 봄’은 드라마를 통해 잠시나마 대리만족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나는 드라마를 볼 때면 설레고 따뜻했던 그 날, 벚꽃 흩날리던 청춘으로 돌아간다.


 그래,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이 TV와 깐부 맺을 나이가 다. 내 나이 마흔셋, 지천명(知天命)이 코앞 인데 이해 못할 스토리가 무어 있겠나. 앞으로도 ‘내 마음의 봄’을 잘 부탁한다. TV야! 드라마야!

매거진의 이전글 배달 중에 커피를 쏟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