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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존스 Dec 09. 2022

꿈 속의 밀월.

  간밤에 그 애의 꿈을 꾸었다. 오래간만이었다. 날이 밝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를 붙잡는 그 애에게 나는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조금만 더 너와 함께 있을 수 있기를.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그럴듯한 거짓말이 떠오르기를...


  그 애는 헤어진 후에도 가끔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것도 꼭 내가 다른 남자랑 같이 있을 때만 말이다. 나는 그때마다 그 애의 전화를 끊지 못해 절절매곤 했다.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인연들과의 관계는 늘 위태로웠다.


  나는 빈곤하고 찌질한 그 애의 삶에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그 애를 떠나지 못해 결국엔 그의 궁색함이 나의 것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 애가 그토록 믿었던 나의 사랑을, 우리의 운명을 마구 구기고 짓밟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 주제에 나는 남아있는 사랑을 핑계로 내 곁을 맴도는 그를 받아주고 또 받아주고 있었다.


  2006년 12월 3일 새벽. 내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던 그날 밤에도 그 애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내 옆에는 Y가 있었다. 3개월 뒤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예비 신랑 Y에게 수원에 있는 시험장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Y는 시험 전날 저녁때부터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그 애는 꿈에서 나를 보았노라고. 갑자기 내가 꿈에 나와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전화했노라고 말했다. 어쩌면 너와 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도 몰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며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게. 이제 너도 너의 인생을 살아.


  그 후로 15년이 지났다. 우연히라도 만나질 줄 알았던 우리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함께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금도 나는 가끔 꿈속에서 그를 만난다.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누구보다 뜨겁고 절절하게 사랑했던 가난하고 여린 나의 연인아. 꿈에서라도 너를 만나면 비밀스럽게 감춰왔던 내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잘 지내고 있느냐고, 살아보니 삶은 별거 없더라고, 사실은 네가 가끔 그리웠다고. 하지만 별거 아닌 이 삶이 지금의 나에겐 전부이기에 차마 나는 꿈속에서조차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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