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이 행복한 시기를 아발론의 황금기로 명명한다." "찬성!!" 나와 남자친구의 어느 날의 대화였다. 그만큼, 우리는 행복한 여름을 보냈다. 행복을 글로 남기기란 어려운 일이다. 행복은 순간의 마법 같은 일이라, 지나가고 나서 돌이켜보면 왜 그때 행복했는지조차 분명히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이때 부쩍 위장이 회복된 내가 디저트 5개를 한 번에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도 분명치 않다. 분명한 건 나와 남자친구는 이사로 정신 없던 봄이 지나, 여름에 안정을 찾고 나서 갑자기 엄청나게 행복한 시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가 일하는 로펌의 팀은 1년차 변호사에게 그다지 많은 일을 시키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따르고 싶은 선배 변호사 한 명이 생겨 그 팀을 골랐는데, 결과적으로 그의 업무 스타일과 흥미에 딱 맞는 곳을 고르게 되었다. 그는 확실하게 할일이 있을 때만 일을 하고 싶어하는 편이었는데 해당 팀은 무리한 출퇴근을 강요하지 않았다. 변호사시험과 내 병 간호를 병행하며 강행했던 남자친구는 연초에는 꽤 지친 상태였다. '한 달만 쉬고 싶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곧 그 불평도 쏙 들어갔다. 다른 팀에 간 동기들이 새벽에 퇴근하며 바쁜 와중 혼자서만 칼퇴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빙글빙글 웃으며 퇴근하는 모습이 얄밉다는 평까지 들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느지막하게 출근하기 전까지의 남자친구와 즐거운 여가를 보내고, 그 뒤 홀로 운동이나 독서 따위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세 돌아오는 남자친구와 또 다시 휴식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내가 아직 몸이 좋지 않아 외출의 빈도수는 적었지만 한 번 나갈 때마다 완벽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법을 테마로 한 방탈출에 가기도 하고, 노량진에서 둘이서 엄청난 양의 해산물을 쪄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연신 '행복하다', '행복하다'고 둘이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믿기지 않게 힘든 시절이 많았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그 시절에 이런 시절이 올 거란 걸 과연 알기나 했을까 란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행복하다. 왜 이렇게 행복하지?"
"글쎄. 일단 우리 관계가 너무 안정됐어."
"그러게."
"그리고 너도 쉬는 데에 이제야 익숙해지는 거 같고."
"맞아."
"맛있는 걸 매일 먹는 거?"
"맞아!"
이런 대화를 수십 번도 더 했던 것 같다.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복에 놀라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사방팔방에 사람들에게 '나 행복해요!' 라고 알리기까지 했다. SNS에는 이렇게 써놨다.
남친 왈 요새 넘 행복하다 행복을 때려붓는 기분이다
나도 나도
인생에서 오롯이 안전하게 행복감을 누려본 적이 별로 없었어서 너무도 이 감각이 낯설고 황홀하게 느껴져 오두방정을 안 떨 수가 없었다. '행복한 사람을 보고 싶으면 날 보면 돼' 라고까지 친구에게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갖은 고생 끝에 행복해하는 날 보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요리에 취미를 붙이기도 했는데, 전복 버터구이를 해놨단 소식에 남자친구가 신나서 맥주까지 사놓으라 소리치며 달려왔으나 내가 다 먹어서 작은 것 3개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요리는 왜 이리 힘든지. 내가 만든 곤드레밥은 이상하게 먹으면 속이 아팠고 쭈꾸미삼겹살볶음은 쭈꾸미가 질겨졌다. 결과적으로 남자친구에게서 '여자친구의 요리 중 제일 맛있는 건 새우를 그냥 삶은 거였다'란 망언이 나오게 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변호사시험을 일 년 미룬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 결과 여름에는 죄책감 없이 쉴 수 있었다. 좋아하는 추리게임 분야에 주목할 만한 신작이 나와 재밌게 플레이한 것도 여름의 일이었다.
2023년 여름은 내게 말 그대로 황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