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디스크. 출혈로 가득한 위와 장.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내가 아프게 된 원인을 알아야 했다.
어릴 때부터 놀고 까불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유치원에서의 별명은 당대 인기그룹 핑클의 인기멤버 이효리였고, 조금 나이가 들어서 생긴 별명은 웬 아이가 체육복을 입고 계속 쏘다닌다 하여 체육복 소녀였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나는 알았어야 했다.
나에게는 관심 종자 기질이 있다는 것을!
"전교에서 수학, 한자 시험 100점 맞은 건 샐리 뿐이다. 나와서 상 받아라."
나는 교단 앞, 선생님 옆에 쑥스럽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배배 꼬이는 몸짓과 다르게 얼굴 위로는 누구보다 기쁨 어린 미소를 지은 채였다.
흔히 말하는 '좀 재수 없는 X'. 그게 나였던 것 같다.
관심 받는 걸 좋아했다.
이름이 불리는 게 좋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될 때 기뻤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공부를 했다고 하면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보통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공부의 이유를 말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도 자기소개서는 더 고상한 언어로 썼다. 로스쿨에 들어갈 때는 공익을 향한 내 마음은 북극성이 되어 영원히 내가 길을 잃지 않게 해줄 것이라고까지 썼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 내 진심이었을까? 돌이켜보면 의문이 든다.
쉬게 되면서 그동안 그토록 달렸던 이유를 '유치하게' '조잡하게' '초라하게' 찾아보고자 했다. 사람의 깊은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의 불꽃은 누구나 원초적이고 원색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색깔이 세 가지 색의 합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몇 요소의 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리게 된 기억이 그때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두가 보는 앞에서 교단에 서서 박수를 받는 풍경.
내가 찾은 나의 공부의 이유는 그토록 간단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관심.
전교 1등을 맞아주는 박수 소리. 그 속에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어린 시절의 나.
'그럴 때 살아있다고 느낀 거였어! 새로운 걸 하고 있고, 현실을 바꾸고 있다고 느낀 거였던 거야.'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도 없이 맞았고 눈앞에서 가족끼리 유혈의 난투를 벌이는 것도 봤다.
나와 어울리지 말라고 자기 딸을 단속하는 아주머니들도 많았다.
수군거리는 목소리. 흘겨보는 시선들. 해맑은 어린이로서는 험난한 성장환경이었다.
그 아이는 자라나, 2018년 겨울,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가슴 속에는 두방망이치는 기쁨이, 머릿속에는 드라마처럼 앞으로는 삶이 전부 변할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비로소 세상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로스쿨에서 맞이한 첫 공익활동에서 나는 내 감정만 앞세운 끝에 소년범 국선보조인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로스쿨에 다니는 내내, 세상에 대해 쌓인 지난 미움과 분노를 해소하지 못한 나는 로스쿨 사람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아 그 자체였다. 공부만 하느라 나는 남들과의 대화도 제대로 할 줄 모를 정도로 사회성이 낮았다. 뾰족한 정의감은 계속 스스로를 찔렀다.
'왜 그토록 미친듯이 달렸지?'
'왜 이렇게까지 다른 모든 걸 희생하며 공부에 매달렸을까?'
원점으로 돌아가자. 애초에 내가 공부를 시작했던 원초적 욕구를 찾아갔다.
'그렇구나.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기보다는 친구가 필요했구나.'
뾰족한 마음이 모서리를 거뒀다. 앞으로 이야기 내내 등장할 뜨개질 모임에 등록한 것도 그 즈음의 일이었다.
관심과 인정에 목 말랐던 지난 내 모습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 타고난 마음의 색깔은 소중하니까.
다만 이제부터는 더 현명한 관심종자로 살기로 했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도 더 제대로 공부 해야 하고, 더 제대로 다른 사람들과도 맞춰나가야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는 것.
하늘이 나의 몸을 망가뜨린 데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