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이어서)
"나, 쉬기로 했어."
흡. 숨을 들이마쉰다. 눈알을 천장으로 굴린다. 친구들에게 쉰다고 말하는 데 왜 이리 많은 용기가 필요하던지!
또래 친구들은 친구인 동시에 잠재적 경쟁자가 아니던가. 그들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많은 성과를 이루는 동안 나는 그저 병(病)을 얻었을 뿐이라는 고백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 이제야?! "
어? 예상과는 반응이 다르다.
" 축하해!!! 네가 언제 좀 쉬나 했어. "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던 나 자신부터가 문제였다는 것을.
그렇게 병든 마음이 세포 하나하나로 퍼져, 몸도 병들었었다는 것을.
당신이 언제 쉬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주위에 물어보라.
당신이 쉰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미 마음과 몸은 종합병동 상태였다.
가는 병원은 세 가지나 됐다.
"의사 선생님, 제가 꼭 쉬어야 하나요?"
신경과, 내과, 정형외과를 갈 때마다 물어봤다.
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끝난 윷놀이 판을 붙잡고 '한 판 더, 한 판 더'를 외치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들은 단호한 삼중창을 했다.
""" 네!!! """
이쯤 되니 떼쓰는 아이 같던 나도, 기세를 꺾을 수밖에는 없었다.
나의 휴식기의 시작이었다.
왜,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면 그렇지 않은가. 사람이 갑자기 쫄게 된다. 갑자기 핸들을 잡는 법도 헷갈리고, 어떤 발부터 페달에 올려야 할지도 헷갈리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타게 되면? 가는 건 술술이다. 가는 길에 부는 바람이 땀방울도 식혀주고 절로 흥얼흥얼~ 콧노래도 나오며 페달을 밟을 때마다 밀려나며 새롭게 갱신되는 풍경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시름도 잊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여행을 떠났으면 반드시 어디선가는 이런 순간을 맞닥뜨린다.
방향을 꺾어야 할 때.
속도를 줄여야 할 때.
이런 마음속 소리가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적이 있었을 것이다.
'멈추는 게 더 무서워!!!!'
처음 쉬기 시작한 2023년 초, 나는 눈 내리는 인천 영종도에서 TV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비록 쉬어야 해서 게임방송을 본다 해도, 의미 있는 것으로 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는 스판(span)을 길게 해서 집중 연습까지 겸하면...'
믿기는가? 지금 쉬고 난 후 한결 여유 있어진 내 눈에는 이제야 그녀가 이상한 것이 보이지만, 당시의 그녀(나 자신)는 몰랐다.
뽀모도로 공부법.
미라클 모닝.
부의 추월차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이불부터 개라." 실리콘 밸리 CEO들의 명언. 춤추며 일하는 방법.
이런 것들이 가득 쌓인 나의 유튜브 기록은 비슷한 영상들을 계속해서 추천했고, 나는 나만의 인지적 거품(bubble)에 갇혀 있었다. 나는 공부를 멈추는 것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생각이 달라지는 건 눈 내리는 영종도의 바다에 가고 난 뒤였다. 나는 그곳의 외딴 와인바에서 웬 건설회사 사장님과, 모델을 꿈꾸던 스튜어디스 지망생을 만나 친구를 맺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하도록 하자.
처음 꺼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 한번 해볼까 한다.
"의사 선생님, 제가 꼭 쉬어야 하나요?"
이 말에 사실, 한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살고 싶으시다면요!"
하기는, 죽든 살든 본인 마음에 걸린 문제 아니겠는가. 그제야 알게 됐다.
나에게 정말 쉼이 필요하다. 나는 살아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망설임 없이 휴식에 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