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기 위해 한 없이 게을러지기
8년 동안 세 군데 로펌을 다녔다. 첫 번째는 한국 변호사가 있는 이민법을 다루는 곳이었고, 그다음은 분노조절 장애가 있었던 유태인 변호사와 온통 질투병에 사로잡힌 여자들이 일하는 사고상해 로펌, 그리고 지금 다니는 70명 정도 직원이 있는 사고상해 로펌이다.
로펌에서 일하는 변호사는 5 가지 중독 (술, 마약, 노름, 여자, 쇼핑) 중 한 가지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터프한 직업이다. 나는 변호사를 돕는 paralegal로 일하면서 다양한 부류의 변호사들과 일을 해봤는데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업무량이 많고 시간 내에 해내야 하는 압박감 및 승소율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스트레스가 심한데 죽어라 공부하고, 시험을 패스한 후 변호사가 된 후 학자금을 갚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정상인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성격 좋은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못 봤고, 일을 잘하면 성질이 더럽거나 강박증 증상이 있거나 인간 냄새는 1도 없는 로봇형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 생각해 보았다.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데 내가 바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갭을 조절하지 못해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늘 조급하고 분주하여 스스로를 이겨내지 못하는 스타일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일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늘어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인텐시브 한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이나 자질 못지않게 일에 대한 대처 능력과 삶의 발란스를 유지하는 스킬이라는 것을 8년이 지난 후 알게 되었다. 이상하게 문제 안에 있을 때는 그 문제를 보지 못하고, 상황에서 나와 객관적인 시각이 생겼을 때 진짜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성능 초과로 기능을 상실해 버린 나의 뇌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온다. 커피 한 잔과 요거트를 먹고 침대에 누워 뒹굴 거리며 예전에 봤었던 드라마 ‘멜로가 체질’을 봤다. 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아픔을 참고 살아가는 여주인공이 심리 상담가를 찾아갔는데, 그녀에게 일을 쉬고 여행을 가라고 추천한다. 집에서는 원래 쉴 수 없는 것이라며…
긴 여행을 떠나고 집에 돌아오면 그래도 집이 제일 좋다고 말하지만 반복된 일상과 주어진 삶의 역할은 내 집에서조차 편하게 쉴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떠나온 나는 아침에 일어나도 침대 시트를 정리하지 않고, 음식을 먹고 바로 치우지 않으며 널브러져 있는 짐과 함께 흐트러진 스스로를 용인해 준다. 낮잠 자는 시간은 왠지 아깝고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는 건 멍청해지는 것 같아서 싫었는데 보란 듯이 아주 게으르고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냈다.
배만 안고프면 계속 누워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주섬주섬 일어나 슈퍼에 가서 치킨, 감자튀김, 어니언링 (2인분 정도 되는 이 많은 양이 $7) 퀘벡 맥주를 사가지고 왔다. 영어로 말하지만 불어로 대답하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도 그냥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준다. 저녁을 먹고 마침 주방에 있었던 숙소 스탭, John과 함께 여행은 어떤지, 여기에 왜 오게 되었는지 등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심리상담가처럼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나를 찾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왔다고 하니까, 비어있는 조금 더 좋은 옆 방(욕조와 화장실이 있고 퀘벡 시티 뷰가 보이는)을 써도 된다고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는 것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