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lly Yang Oct 06. 2023

이직 후 두 달 넘었어요~

고통이 남겨준 것들

이십 대 중반,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취직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서른 살에 유학을 준비하고 공부 및 결혼한 시기 몇 년을 제외하고 오십 살이 된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으니, 꽤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했고, 여러 직장을 다녔다.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해진 틀이 있는 울타리 안을 늘 벗어나고 싶어 했고, 매일 주어진 일을 반복해야 하는 기계 같은 삶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그나마 잡지/신문사의 기자 일을 할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창의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던 일이 적성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 외에는 한 번도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자기 이익만 밝히는 악덕 사장,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일을 시켜 지불하는 돈을 대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도, 부하 직원에게 부당하게 일을 맡기는 상사, 일의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미국에 오니 사정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서 나는 너희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할수록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멀쩡하게 다닌다는 직장은 개인의 능력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함께함으로 좋은 시너지를 이끌어내며 조금은 덜 객관적인 상사에게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함을 배우는 등, 실수를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곳은 꿈에서나 나올법한, 현실에는 등장하지 않는 곳 같았다.


나는 죽기 전에, 회사에서 정상적인 사람들을 만나 인간답게 대접받으며,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을 받고 실수한 일에 대해서는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늘 생각했다. 나는 정말 그런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어제 회사 조직 안에 Region(지역) 미팅에 다녀왔다. 각 주마다 가까운 지역의 직원들이 모여 1년에 한 번 식사하고 인사하며 교제하는 시간과 1년에 한 번 전체 콘퍼런스를 통해 교육받는 시간이 있다. 처음으로 지역에 있는 직원들과 대면하는 날이었는데, 모두 기쁜 마음으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썼고, 먼저 다가와서 인사해 주었다. 처음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 너무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니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해주었다.

모임은 미국의 시골 정서가 가득한 한적한 타운의 오래된 식당 야외에서 진행되었는데, 점심을 먹고 서로 교제하며 이야기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8년 동안 로펌에서 일을 했고 같은 분야에서 좋은 조건의 오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로 이직하면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루의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이 직장이기 때문에, 아무리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도 삶의 중요한 구석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버티다시피 일했던 지난 직장에서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이곳으로 올 수 있게 해 준 과정이 되었다. 숨 쉴 수도 없는 쏟아지는 일들 속에 파묻혀 수많은 진상 손님들을 상대하고, 다양한 악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수화기를 붙들었던 덕분에, 나는 이 백인들 사이에 유일한 non-native speaker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지 소개하는 것이 전혀 떨리지 않았다.  


이직 후 두 달, 그리고 한주가 지나가고 있다. 나는 평온하게 적응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영한 것들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