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이직-퇴사-?
결국, 나는 3, 6, 9의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3개월이 지나면서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회사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미국의 대기업은 시스템과 혜택이 잘 되어있다) 같이 일하는 보스가 전형적인 60대 한국 남자라는 게 문제였다. 커피를 갖다 주거나 스케줄 관리는 내 일의 일부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나의 직무에는 없는 요구가 많아졌다. 나는 딱 한 번 정중하게 'NO'를 했고 나머지는 적당한 선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했다. 팀의 발전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100% 만족할 수 있는 조직은 없으니,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분배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거슬림은 한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예전에 한국 기업의 부사장이었던 이 보스는 그의 근성대로 일을 하는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직원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발전하지 않는 직원들은 '쫀다고' 말했다. 나도 사회생활을 오래 했는데 이런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를 쫄 수도 있다는 뜻이냐고 살짝 웃으며 되물었는데... 그러려고 밑밥을 엄청 깔아놓았다는 답변을,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 대화가 오고 간 이후, 농담이든 진담이든 상관없이 내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50세에 어렵게 이직을 했고 바라던 대로 조건도 좋은 대기업에 들어왔지만 나는 정말이지 더 이상 대놓고 쪼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사이에 한 달이 지나갔다. 복잡한 마음이 보스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내가 보기에는 별 거 아닌 일로 보스는 화가 났고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단어를 (잔말 말고 내 지시대로 따르라는 식의 뉘앙스) 내뱉으며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갔다.
나는 그 자리를 나왔고 이틀 동안 sick days를 쓰며 회사에 가지 않았다. 회사에 가지 못한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이 또한 꼰대 보스를 화나게 하는 일임을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전화를 걸어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 'Why? 나에게 있는 휴가와 병가를 정당하게 사용하는데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한다는 뜻?'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나는 한 시간 동안 그의 입장에서 정말 평생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했다. 일주일 뒤 나는 정중히 사직 의사를 표했고 이 일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이유를 만들어 보스가 노하지 않도록 잘 설명했다.
50세가 된 해에 나는 찬란하게 퇴사-이직-퇴사를 하며 2023년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다. 심지어 J의 계획성을 거스르며 다음 단계 준비 없이 일을 질러 버렸다. 열심히 구직 사이트를 보고 있지만 나는 조직과 맞지 않는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과 더불어 어느 회사로도 가고 싶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