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단상 49
지난 토요일 링컨센터에서 NYCP의 챔버뮤직 시리즈가 있었다. 3년째 링컨센터 Bruno Walter Auditorium과함께하는 이 프로젝트는 도서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악보들을 전시하며 1년에 3번 무료 콘서트로 진행된다.
보통은 토요일 맨하탄 연주만 하는데, 이번에는 그 다음날 뉴저지 레오니아에 있는 교회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연주했다. 미국의 현대 작곡가들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레퍼토어는 잘 알려진 곡도, 자주 연주되는 곡도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듣기 익숙한 곡이 있거나 잘 알려진 연주자가 있을 때 공연장을 찾는다. 링컨센터 시리즈를 좋아하는 애호가들때문에 어느 정도 관객수가 보장되는 맨하탄 연주 보다는 뉴저지 연주가 걱정이 되었다. 운영자의 입장에서 볼때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뉴저지에서 연주회를 한번 더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과 비용 투자에 비해 받을 수 있는 Benefit이 적다는 다분히 계산적인 아이디어였다.
내 의견에 대한 남편의 생각은 이렇다.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으로 가치 있는 곡을 연주하는 것도 음악가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즉,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연주도 필요하지만 연주자들이 예술가로서 도전해볼 수 있는 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 아무도 연주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곡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이라도 이런 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면, 연주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유명 작가의 책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잘 팔리는 책만 출판하고 고전이나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는 책은 출판하지 않는다면 결국 단 한명도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효율적 생산과 판매 만이 목적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런 일에 재력가나 기업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래서 예술가의 길은 깊고, 때로는 아프고, 또 알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을 주기도 하지만 누구나 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피가 흐르기에 나는 너무 계산적인 사람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