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단상 57
물가가 비싼 영국은 내가 머물렀던 2003-06년 당시에는 학생 신분으로도 20시간 일을 할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갔기 때문에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영어를 잘못해서 작은 Fish and chips 가게에서 일을 했다. 주인은 파키스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영어 못하는 동양인을 무시했던 것 같다. 지하실에 감자를 깎는 기계가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감자를 담아 가지고와서 튀기는 일과 Casher를 했었다.
그 다음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Waitress, 정통 이탈리안 피자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레스토랑은 작지만 늘 사람이 많았고, 밤 12시에 끝났다. 주인은 내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 싱송이라고 불렀다. 40-50개 되는 메뉴와 와인 리스트를 외우는 것이 진짜 힘들었다. 그때 나는 와인 뚜껑을 얼마나 빨리 딸 수 있는지 배웠다.
세 번째는 일본 마트, 각종 일본 음식을 팔면서 스시나 도시락을 아침에 만들어서 팔았다. 나는 스시용 밥을 만들고 (밥을 넣고 모양을 만들어내는 틀이 있었다) 도시락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직원들이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나만 유일한 한국사람이었다.
오전에는 일본 마트에서 일하고 학교에 갔다가 저녁에는 인디안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다. 사장은 젊은 무슬림이었는데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알고 자기도 예수가 누구인지 안다고 하며 가끔 종교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인도 음식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친구들이 부탁하면, 하우스나 CVS 같은 상점의 청소 아르바이트도 했다. 상점은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6시쯤 나가서 하면 되고, 하우스는 거의 하루 종일 했는데, 몇 시간 동안 다림질하는 게 쥐약이었다.
화룡점정(영어로는 final achievement 란다)은 친구가 오픈 후에 정리하지 않고 간 점심만 팔았던 작은 식당을 강제 인수받아 closing 할 때까지 맡아서 장사했다. 마지막에 마무리할 때 물건 내다 팔고, 남은 음료수나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으로 왔던, 정말 지독하게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ㅠㅠ
그 이후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아르바이트는 끝났지만 나의 영국 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가끔 콘도, Gym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식당의 Waitress를 볼 때 고단했던 나의 청춘이 생각나 마음이 애잔하다.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 이름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모두 또렷이 기억난다.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