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향수 냄새, 누군가와 함께 들었던 음악, 함께 같던 장소,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생각나는 추억. 모두 형체가 없는 것들인데도 이상하게 오랫동안 기억의 끝에 매달려 있다.
머릿속에 지우개를 넣고 돌아서면 어떤 사건이나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잊어버리는 남편이랑 살다보니 나는 별것 아닌 것들도 다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결혼 초 (12년 전) 받은 선물은 누가 줬는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만난 사람의 의상은 어땠는지 하는 사소한 것들 말이다.
내가 기억하려고 노력한다기 보다는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사진처럼 찍혀서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것 같다. 기억은 가끔 왜곡되거나 흐려지기도 하는데, 보이지 않는 형체는 오히려 더 진하게 남는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혹은 중요한 순서대로 기억하고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 (누구라고 콕 찍어 이야기는 안하겠지만ㅎㅎ)이 가끔은 부럽다. 나는 뇌용량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넣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복잡해지고 생각이 많아지고 헝클어진다. 나이가 조금 더 먹으면 건망증도 생기고 스스로에게도 덜 엄격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화려한 고명은 없어도 깊은 국물로 맛을 내서 뒤끝이 없는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이를 먹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ps: 3.29.2019 @Italy, 또 하나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