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년
12년 전 오늘,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때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나는 행복했고, 슬펐고, 기뻤고 또 외로워하기도 했다. 결혼의 유무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그림들이 결코 하나의 주제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멋진 레스토랑도 근사한 선물도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맞이했고, 집에 남아 있는 음식으로 밥을 먹은 후 동네를 산책했고 빨래를 했다.
남편은 미국에서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약속한 날보다 하루 일찍 몰래와서 깜짝 프로포즈를 했다 (그는 피아노를 치며 심지어 가요를 불렀다). 여자는 추억을 먹고 산다더니 12년 전에 단 한 번 있었던 이벤트로 첫 데뷔한 로코 드라마의 여주인공인 듯 살았다 (참고로 그 여주인공의 작품은 단 하나뿐이다 ㅎㅎ).
결혼은 드라마도, 환상도 아닌 현실이지만 아직도 남편에게 그런 기대를 하냐는 오래된 부부들의 질타 속에서도 나는 꿋꿋이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남편도 그러했으리라 믿는다.
어떠한 것도, 특별히 인간관계는 노력없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밖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사람들을 보며 부부끼리는 밖에서 저러는 거 아니라면서 서로 농담하지만,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익숙함과 편안함도 사랑의 다른 축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될까. 조촐한 저녁 상을 마주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말한다. Happy 12th Annivers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