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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r 26. 2024

02 180bpm

※ 2024년 2월 5일 에세이드라이브에서 '가락'을 주제로 작성한 글입니다.


 

180bpm.     


감이 잘 오지 않으니, 유튜브에 검색해서 그 속도를 가늠해 본다. 1초에 세 번 똑딱거리는 메트로놈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급해지는 기분이다. 러닝용으로 만들어진 180bpm 플레이리스트도 있길래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쿵짝쿵짝하는 리듬에 가만 앉아서 숨이 가빠질 뻔했다.

     

1분 동안 180번 뛰는 심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나의 아랫배 아래 어딘가에 자리 잡았다. 지금쯤이 가장 빠르게 뛰는 시기라곤 하지만, 얼마나 만들어낼 것이 많고 자라나야 할 것이 많기에 이렇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기가 생겼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 그 사실을 알게 된 지 딱 한 달이 된 지금도 실감이 나는 날보다 나지 않는 날이 많다. 지금까지 네 차례.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통해 자그마한 세상을 키워가고 있는 형체를 마주할 때만 실감이 난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다.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어떤 변화가 있었나. 나라는 존재 자체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는 것 같은데, 아주 큰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별다른 차이는 없다. 좋아하던 술을 입에도 대지 않게 된 것. 카페에서는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게 된 것. 시도 때도 없이 하품이 나는 것. 퇴근 후 저녁을 먹자마자 잠드는 것 정도가 있을까.


임신 사실을 알고 2주 정도는 들뜬 기분과 평소답지 않은 체력 탓에 좀 혼란스럽기도 했다. 생경한 모습의 자그마한 생명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문제가 있진 않은지 걱정도 많았다. 매일매일 검색을 하고 걱정을 하고 ‘괜찮을 거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하루를 보냈다. 한 달 정도가 되니 여러 가지로 좀 편안해졌다. 유난스러운 나와 달리 차분하고 평온한 아기 덕분에 입덧도 없고, 특별히 불편한 곳 없이 하루하루를 잘 보내고 있으니.     


몸과 마음에 커다란 변화는 없지만, 일상의 자잘한 변화는 있다. 쉽게 피로해지고 잠이 많아지니 일상의 루틴으로 여겨왔던 일들에 지장이 생긴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걸어서 출근했는데, 전과 달리 도착 무렵 너무 피곤해져서 안정기라고들 하는 16주 차가 될 때까지는 차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함께 책을 만들었던 이들과 ZOOM에서 모여 각자의 작업을 하거나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작업실 103호’ 모임에서도 정해진 시간을 못 채우고 먼저 자러 가보겠다고 인사를 하는 날이 생겼다.

  

지난 연말 남편과 마주 앉아 새해 목표를 세우던 날, 함께 이룰 첫 번째 목표로 우리를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적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아기 덕분에 새해가 되자마자 새해 목표를 이룬 사람이 됐다.

   

무언가 먹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나 말고 생각해야 할 존재와 함께하는 일은 아직 낯설지만, 참 고맙고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아있는 200여 일, 짧은 기간이지만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천천히 해보아야겠다. 아가도 지금처럼, 괜한 걱정이 무색하게 잘 자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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