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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r 26. 2024

01 '혼자인 나'와 헤어지기

※ 2024년 1월 16일, 작업실103호 모임에서 '헤어진 너에게'를 주제로 쓴 글입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너'와 헤어진 지도 3주가 지났으니, 더 늦기 전에 기록을 시작해야지. 지난 3주 동안 아주 기쁘기도 했지만, 스스로 많이 낯설기도 했으니 이 마음을 남겨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시작은 으슬으슬한 몸살감기였다. 특별히 찬 바람을 쐬거나, 무리하지 않았는데 온몸에 한기가 찾아들고, 코와 목이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컨디션 난조가 의아하긴 했지만 ‘이러다 말겠지.’ 하며 가벼이 여겼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니, 생리 주기 앱에서 생리 예정일이라고 알려준 지 5일이 지나 있었다. 혹시 싶은 마음에 로켓배송으로 임신테스트기를 주문했다.


“이것 좀 봐.”


생일날 아침, 눈뜨자마자 테스트를 했다. 결과는 선명한 두 줄. 비몽사몽이라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일단 남편을 깨웠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빨간 두 줄이 그려진 플라스틱 막대기를 보게 된 남편의 눈이 네 배로 커졌다.


지난가을 무렵부터 임신을 준비하긴 했지만, 지난달에는 망고 알레르기로 투병하느라 마음을 놓았던 터라 정말로 놀랐다. 열심히 달력을 보고 계산을 하던 때는 생기지 않던 아이였는데. 생각해 보면 최근에 부쩍 잠이 많아지긴 했다. 퇴근 후 저녁을 챙겨 먹고 8시도 되기 전에 소파에 누워 잠드는 날이 많았다. 몸살 기운이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임신 초기에는 체온이 올라가고,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하니.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5주 차 정도가 된 것 같았다. (임신 주 수는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계산해서, 예상보다 꽤 주 수가 지나있다.) 병원에 바로 가라, 5주 차에 가라, 6주 차에 가라 등 분분한 의견이 있었으나, 정말로 임신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뒤인 토요일 오전,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여기에 보이는 게 아기집이에요. 아직 난황은 안 보이네요. 이 정도면 4주 5일 정도 됐다고 보시면 되고요. 예정일은 9월 8일 정도가 되겠네요. 정확한 날짜는 아기가 생기면 계산할 수 있어요. 우선 다음 주에 또 오셔서 잘 크고 있나 확인해 볼게요.”


임신 준비를 시작할 무렵 처음 마주했던 의사 선생님은 말보다는 표정으로 축하를 건네주셨다. 수납을 마치니 병원 곳곳에서 영양 상담, 바우처 카드 상담, 태아보험 상담 같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어졌다. 얼떨떨한 상황이라 일단 간단한 설명만 듣고 바우처 카드만 신청하고서 병원을 나섰다. 아기집을 보긴 했지만, 난황을 보지 못했단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다음 진료일까지, 일주일 동안 인생에서 가장 긴 기다림을 경험했다.


일주일 후 걱정이 무색하게 난황이 동그랗게 생겨있었고, 아주 자그마한 심장 비슷한 것이 깜빡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며칠만 지나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고, 일주일 뒤 다시 예약을 잡아 우렁찬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소식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어딘가 무거운 마음도 몰려들었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가는 초대장을 받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오롯이 나 하나만을 챙기며 살면 됐는데, 더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잡아두었던 술 약속을 하나둘 취소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저녁 약속은 한 번 참석했는데, 8시가 넘어가니 졸음이 몰려와서 혼났다. 집에 도착해서는 전 같지 않은 체력에 괜히 우울감이 몰려와 한바탕 울기도 했다. 호르몬의 노예가 된다더니, 시작된 것인가. 아무튼 그리하야 흔히들 안정기라 부르는 12주 차가 될 때까지는 저녁 약속을 가급적 잡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와 달리 퇴근하자마자 집에 곧장 오는 일상이 계속되다 보니, 자연스레 TV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유튜브에 이런저런 키워드를 검색해 임신 초기의 증상과 주의할 점에 관한 영상을 섭렵했다. 다른 말보다 임신 중에는 ‘완전히 다른’ 몸이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혼자인 나’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몇 주 동안 오르락내리락 마음이 요동쳤다. 한편으로는 정말 이별의 과정 같기도 했다. 이제는 좀 더 단단하게 마음을 먹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술을 못 마시고, 커피를 조심해야 하는 차원을 넘어, 예상치 못한 변화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마주할 일이 많아질 테니까.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보다 두 배 빠르게 심장박동을 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존재가 함께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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