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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Nov 23. 2021

당신이 가장 최근에 산 물건은 무엇인가요?

소비, 취향의 반영


 [5,000원 추가 시 무료배송]     


 구두 한 켤레를 사려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마음에 드는 친구를 발견해 장바구니에 넣었다. 가격은 45,000원. 아니, 배송비를 포함하니 48,500원. 아주 조금만 더 장바구니에 담으면 배송비가 없다고 하니, 못 이기는 척 [ACC] 카테고리를 클릭. 그럼 그곳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켤레에 단돈 이천 원인 양말이 색색으로 놓여 있다.

     

 ‘그래, 이제 곧 겨울인데 폭닥한 양말 몇 켤레 사 두지 뭐.’     


 무난한 색상으로 양말 세 켤레를 더 담고 나니, 결제 금액은 51,000원. 됐다! 3,500원을 아끼기 위해 2,500원을 더 썼지만 묘한 승리감이 든다.     


 이 소비가 합리적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지금 따져보기엔 이르다. 아직 구두도, 양말도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양말이 짱짱하고, 폭닥하고, 적당한 길이감을 가져 겨우내 자주 손이 간다면 꽤 합리적인 소비로 기록될 것이고, 수줍음이 많아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운동화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거나, 세탁 몇 번에 쉬이 늘어나 버린다면 그냥 2,500원이라도 아끼는 게 나았다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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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는 취향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나는 패션에는 큰 관심이 없다. 어렸을 때는 맞는 옷이 있으면 사서 입었고, 다이어트 후 1~2년은 '내가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다니!' 하며 거의 블라우스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치마만 입다가, 최근에는 그저 스스로 보기에 예쁘고, 입기에 편한 옷을 사 입는다.

     

 사실, 옷을 산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출근할 때는 그냥저냥 몇 벌 돌려가며 입고, C와 만나더라도 8할 5푼 3리 정도는 등산이나 걷기 같은 운동 데이트를 하니까 일명 데이트룩 같은 것에도 눈이 잘 안 간다.     


 그나마 몇 개월에 한 번씩 엄지손가락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 자꾸 눈앞에 나타나는 광고가 있다 싶으면 생전 처음 보는 쇼핑몰 앱을 내려받고 첫 구매 쿠폰을 종류별로 적용한 다음 배송비를 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금액을 채워 옷을 산다. 인스타그램 광고는 어찌나 끈질긴지, ‘어 좀 괜찮은데?’ 싶어 한 번쯤 눌러본 광고들은 잊을만하면 자꾸 내 눈앞에 나타난다.     


 옷에 대해 딱히 취향이 없어서, 일정에 따라 맨투맨이든 세미 정장이든 다양한 범주를 오가며 입다 보니, 엊그제 회의 때 처음 만났던 옆 부서 팀장님은 편한 차림의 나를 앞에 두고 한참이나 이ㅇㅇ 주임님은 혹시 어디에 계시느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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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아낌없이 소비할까. 운동에 빠져있는 요즘은 운동복을 주로 사고, 건강한 식단에 관심이 많아져 신선한 샐러드 야채와 반숙란, 닭가슴살, 호박즙, 두유 뭐 이런 건강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주로 산다.


 이솝의 향을 좋아해서 아로마 오일이나 룸 스프레이, 향수를 사고, 독립출판물을 좋아하니까 동네 책방에 들릴 때면 꼭 한두 권의 책을 산다. 어제는 서촌에서 열린 책보부상에 가 독립출판물 몇 권을 사기도 했다. 대부분은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에세이 드라이버 작가님들의 책이었다. (‘팔은 에세이 드라이브로 굽는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맛있는 음식과 귀여운 것 뭐 그런 것들도 좋아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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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양말이 예쁘고 마음에 든다면, 다음번에 나는 조금 더 신중하게 양말을 보고, 고르며 양말에 관한 취향을 조금씩 가지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껏 좌판에서 샀던 양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아마 앞으로도 양말에 딱히 ‘취향’을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더 온전히 좋아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며 살고 싶다. 다만, ‘좋아하는 것’을 담아두는 방의 문은 항상 열어두기로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해야 또 새로운 좋아하는 것이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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