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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Dec 10. 2021

공연이 멈췄다. 스페이스 바를 누른 것처럼.

관객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박수뿐



덜컹거리는 지하철 앉아 얼얼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현실감이 없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휴대전화를 볼 수도 없었고, 피곤이 몰려와 책을 펼치는 건 더 힘들었다. 이게 아닌데.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하도 소리를 질러 칼칼해진 목을 '큼큼' 가다듬고, 여전히 쿵쿵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무대 영상을 돌려보며 여운을 즐기는 것이 정해진 절차인데. 씁쓸한 마음이 들어 그저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신발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관객에게 허용된 것은 그저 박수뿐인 공연이라니, 당연하단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복잡했다. 몇 번 꾸벅꾸벅 졸다 집에 오니 정말이지 꿈을 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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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보러 다니는 거 좋아해요!”


그땐 몰랐다. 그렇게 말한 2019년 이후 '공연 관람'이라는 취미가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누른 마냥 일시 정지되어버리고 말 줄은. 공연이 새로운 취미가 되자마자,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과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것이란 사실을.


처음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챙겨가는 정도였다. 매년 여름과 겨울,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다양한 무대를 선보이는 10cm의 공연은 2015년 이후 빠짐없이 참석했다. 윤현상, 박효신, 장기하와 얼굴들처럼 앨범을 순서대로 재생했을 때, 모르는 곡이 다섯 손가락 내외라면 콘서트 일정을 찾아보았다.


일명 ‘페스티벌’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그다음 일이다. 친구들이 페스티벌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해올 때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 10cm가 헤드라이너로 등장하는 페스티벌을 발견하고는 이끌리듯 티켓을 구매했다. 페스티벌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공연은 주로 잔디밭에서 좌우로 몸을 흔들며 음악을 듣다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스탠딩 존으로 뛰어나갈 수 있는 형태의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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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고 전화해!”


처음 간 페스티벌은 몇 개의 크고 작은 무대가 있고, 무대 별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대형 공연이었다. 그중 잔디 광장의 마지막 가수는 '폴킴'이었고, 실내 체육관의 마지막 가수는 '10cm'였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10cm이고, 이상형은 폴킴인 나에게 이 대결구도는 조금 잔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페스티벌이라고 하는 짜릿한 라이브 공연에 올 생각을 했던 것이 바로 10cm가 헤드라이너였기 때문이었지 않은가. 그렇기에 나는 그를 배신할 수 없었고, 폴킴을 보기 위해 잔디광장에 남겠다는 친구 둘을 등지고 홀로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와 실내체육관으로 향했다.


무대에서는 10cm 권정열의 절친으로 알게 된 밴드 소란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소란이 페스티벌에서 엄청난 인기라는 사실은 익히 들었는데, 공연장의 한쪽 구석에서 무대와 관객을 풀샷으로 내려다보니, 과연 페스티벌을 휘어잡는 이유를 알 만했다. 곡곡마다 떼창 포인트가 있었고, 중간중간 관객들은 앞뒤 양옆의 타인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했으며, 갑자기 수천 명의 관객이 군무까지 추는 것이 아닌가.


그때였다. 끓어오르는 신남을 참지 못하고 짐을 의자에 내팽개치고 일어나 모르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해대며 공연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공연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짐을 저기 객석에 버려둔 채 스탠딩 존에서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고 있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과 하나 되는 기분은 쉽게 잊히질 않았다.    

페스티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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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뭐 하나 꽂히면 최선을 다하는 일명 ‘덕력’의 소유자인 나는 2019년 한 해 동안 대략 10개의 콘서트와 페스티벌에 참석했다. (첫 페스티벌에서 '입덕'한 소란의 단독 콘서트도 필참 목록에 들어갔다.)


연례행사인 페스티벌에 꽂혔으니, 다음 해의 공연 일정과 라인업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각 공연의 특징을 대략 파악하고 맛보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즐길 차례였다. 넘실대는 공연의 홍수 속에서 하나둘 뜨는 라인업을 보며 갈 공연을 정하고 함께 갈 친구를 찾으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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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석하고도 당연하게도 2020년 1월부터 '공연 관람'은 있는데 없는 취미생활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스페이스 바를 두드려보아도 일시 정지된 공연들이 원활하게 재생되지 않는다.


물론, 대중음악 가수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소규모의 관객을 모시거나 관객 없이 온라인 생중계를 하는 것을 기본으로, 자동차를 열 맞춰 세워 놓고 박수와 함성 대신 경적을 울리게 하기도 했다. 단계적 일상 회복이 조심스럽게 시작된 2021년 11월에는 연말 공연 공지가 하나씩 올라왔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다시 공연을 한다니, 내가 그 공간에 있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오랜만에 벅찬 설렘을 느꼈다. 그렇게 10cm와 소란 콘서트 티켓팅에 성공했다.


그리하여 지난 12월 7일 소극장에서 자그맣게 열리는 소란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현장에 가서 공연을 보면 마냥 신나고 전에 느낀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공연을 마친 후 기분이 썩 개운치 않았다. 그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공연에 가는 이유는 무대를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것만이 아니었다. 무대 위의 가수가 발산하는 에너지를 받고서 호응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나 역시도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 더욱 큰 매력이었던 거다. 공연의 '현장감'이라는 것은 음원 대신 라이브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가수와 관객이 소통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예매하여 한자리 차지했던 이번 공연이 아쉽기만 했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관객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 달라지는 방역대책에 노심초사했을 관계자들이나, 손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으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그들이 훨씬 더 많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소란의 소극장 투어에서 보컬 고영배는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마스크를 쓰고 눈만 보이는 여러분이 사실 좀 무섭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는 마스크 속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애틋하기도, 고맙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2019년과 2022년의 소란 콘서트




그냥, 이렇게 공연을 좋아하고 함께 소통하기 위해 총알을 장전하고 기다리는 대중음악 팬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지금은 그런 시기니까, 나중에는 이런 공연도 있었구나, 하며 추억할 수 있겠지. 그때가 되면 스페이스 바를 계속 누르지 않아도 자동 재생되는 영상들처럼 나의 취미 생활이 온전하게 이어지면 좋겠다.


10cm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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