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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r 24. 2022

왓츠 인 마이 '두 번째 칸'

누구나 서랍 속에 드럭스토어 하나쯤은 있잖아요?

세상에는 나를 살게 하는 존재가 여럿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마음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 가족. 매주 목요일 저녁 글을 쓰는 시간과 함께 쓰는 모임 멤버들. 맑은  산을 오르내리며 발견하는 하늘의 색깔. 별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던 소설에서 마주한 가슴 뛰는 문장들. 그리고  곁에서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배우자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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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열한 것들이 다소 감성적인 존재라면, 그야말로 나를 ‘생존하게 하는 것들도 있다. 그것들은 주로 직장인 자아를 위해 특별히 엄선된 친구들로, ‘서랍  번째  서식한다.


사무실에서 나에게 배정된 적당한 크기의 책상 아래에는 서랍이 놓여있다.  칸으로 이루어진 서랍은 어느새 가득 차서  묵직하지만, 언제든 자리를 이동할  있도록 한쪽에 바퀴가 달려있다. 서랍의  칸에는 포스트잇, 여분의 , 스테이플러  같은 문구류와 립밤, 핸드크림 같은 화장품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가장 깊은  번째 칸에는 그때그때 참고해야  서류들과 마스크가  무더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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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의 주인공인  번째 칸을 열어보자.


도로록-’


1.

출근하는 동안 이미 지쳐버린 심신은 서랍을 여는 순간 어느 정도 회복된다.  번째 칸의 가장 앞쪽에는 핸드드립을 위한 각종 집기와 곱게 갈린 원두가 가지런히 놓여 커피 향을 내뿜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출근 직후부터  30분간 바쁜 시간을 보내는데, 보통은 정신없이 보고를 마친  한숨 돌리며 책상에서 천천히 커피를 린다. 그날의 업무계획을 정리하며 커피를 내리는 시간은 짧지만 달콤한 휴식이다.


출근  커피를 마시는 것은 오랜 일상이었지만,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 지는 1년이  넘은  같다. 매일매일 같은 맛과 향의 커피가 아닌, 기분과 원두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가지는 핸드드립의 매력을 알게  후부터 거의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원두 뚜껑을  때마다 황홀해지는 향긋함은 덤이다.


2.

서랍의 안쪽 구석에는 야식, 음주, 고기, 밀가루  몸에 좋지 않은 식습관을 다채롭게 가지고 있는 나에게 조금이나마 면죄부를 주기 위한 곡물 효소가 수줍게 놓여있다. 소화가  되는 기분이     털어 넣고 물을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는 마법 같은 친구다. 때때로는 너무 소화를  시키는 바람에 금세 배가 고파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도 하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싶은 날에는 뜨끈한 차를 한잔할  있도록 루이보스, 캐모마일, 레몬스카이 같은 () 티백도 열을 이루고 있는데, 요즘에는 스페인에서 건너왔다는 달달한 도밍고 차에 빠졌다. 달달한 꿀맛이 함께 나는 꿀홍차, 꿀페퍼민트차, 꿀히비스커스차 등이 있다.


3.

영양제 시리즈도 언급하지 않으면 적잖이 섭섭해할  같다. 건강 검진의 아픈 추억 이후 챙겨먹(으려고 노력하지만  안되) 오메가 3, 내리쬐는 햇볕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필수라는 비타민D, 손톱과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해 준다는 비오틴,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락토핏 유산균, 차디찬 몸에 뜨끈한 기운을 불어넣어   같은 홍삼 스틱까지 재고가 바닥나지 않게 그때그때 적당량을 가져다 나르고 있다.


 달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처럼 아픈 배를 위하여 액상으로  진통제도 지정석을 지켜야 한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가끔 시야가 탁해지거나 눈이 뻑뻑해질 때는 인공 눈물로 씻어낸다. , 가루형 소화제도 오늘 주문해서   번째 서랍의  식구가  예정이다.


-

 차례 이직을  탓에 자리는 왕왕 바뀌지만, 모니터 한쪽 구석이나 업무 수첩 어딘가에는  ‘바른 자세 함께 ‘군것질 줄이기라는 공허한 다짐이 쓰여 있다. 업무에 열중하다 당이 떨어져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사태를 막기 위해 달달한 것들을 입속으로 집어넣던 생존 본능이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다.


그런데, 사실 서랍  번째 칸에는 생각보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다. 건강을 위해 쟁여 놓은 하루 견과   정도만 있을 뿐이다. 이는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먹는 대로 배와 엉덩이에 달려들어 안착할달다구리들을 포기했기 때문........ 은 아쉽게도 아니다.


보통의 경우 그들은 하루를 넘기지 못한 채 뱃속에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방은 퇴근 무렵 오른쪽 아래에 자리한 휴지통을 슬며시 내려다보면 확인할 수 있다. 알맹이는 가고 남은 껍데기의 흔적을 통해.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버텨낸다.


향긋하고, 건강하고, 달콤한 것들의 힘으로.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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