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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Apr 02. 2022

종달리에서 만난 진심

제주 '해녀의 부엌' 방문기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밖에는 조금 전 시작된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차에 앉아 멍하니 비 오는 종달항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평화로운 항구 마을에 잔잔하게 내리는 비는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좋았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어디에선가 하나 둘 차들이 들어와 텅 비었던 주차장이 금방 가득 찼다.     


“이제 나가볼까?”     


내일이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혼여행의 마지막 저녁, 제주 동쪽의 일정은 여행 초반에 마무리했음에도 굳이 다시금 제주의 동쪽으로 향한 이유는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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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가시면 ‘해녀의 부엌’에 꼭 가세요”

“해녀의 부엌? 식당이에요?”     


단순한 질문에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는데, 제주에서 돌아온 뒤 ‘해녀의 부엌’을 추천하는 상황에 놓여보니 나 역시 비슷한 표정이 새어 나왔다. 그러니까, 식당이긴 한데……. 그냥 식당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기는 공연이 있으니까 공연장인가 물으면 또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어려웠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글에는 ‘극장식 레스토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공연을 보고, 해산물에 관해 배우고, 맛있는 밥을 먹고, 해녀 공동체를 이해하고, 해녀 할머니의 인생을 전해 듣는, 그야말로 복합적인 공간이다.      

‘해녀의 부엌’을 추천받고 예약 현황을 열어보았더니 빠른 속도로 매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우리의 여행은 일요일에 출발해 토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으로, 매주 금토일 진행되는 본점의 ‘해녀 이야기’를 예약하기 위해서는 금요일밖에 시간이 없었고, 우물쭈물하다간 놓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녀의 부엌’은 정해진 계획이 없던 신혼여행의 첫 번째 고정 일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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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 시간이 되자 오래된 건물의 문이 열렸다.     


실내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ㄷ’ 자 모양으로 놓여있었고, 마치 소극장에 온 것 같은 공기에 설렘이 몰려왔다. 공간에 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나고,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은 숨소리와 눈동자의 작은 떨림까지도 느껴지는 거리에서 펼쳐져 단숨에 몰입할 수 있었고, 막바지에는 눈물이 퐁퐁 쏟아졌다. 이어서 종달리의 해산물을 소개하는 미니 워크숍이 열렸다. 주인공은 ‘뿔소라’와 ‘군소’였는데 익숙하면서도 낯선 식재료였다.     


유쾌한 해녀 선생님과 마음껏 웃으며 해산물 공부를 하고 나면, 신선한 재료가 가득한 풍족하고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회, 꼬치구이, 찜 세 가지 조리 방법으로 맛볼 수 있는 뿔소라는 풍미가 넘쳤고, 군소 무침, 갈치조림, 전복 물회, 돔베고기 등 정갈한 음식을 정말 행복한 마음으로 먹었다. 텃밭에서 직접 키우신 당근, 오이 등 각종 채소도 제 역할을 해주었다.      


일상에 치여 그야말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잦다. 음식을 급하게 먹어 종일 속이 더부룩한 날도 많다. 그래서인지 재료를 생각하며 천천히 밥을 먹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값진 일인지 느낄 수 있는 식사였다. 정성과 마음이 담긴 식사 한 끼는 참으로 소중했다. 밥 한 끼 먹는 건데 왜 이토록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식사가 끝나면 공연의 주인공이신 해녀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제주 방언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 울다 했다. 지금의 해녀복이 나오기 이전, 얇은 천 옷을 입고 겨울 바다에 뛰어드셨을 할머니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때는 마음이 얼어붙었고, 수줍음 많은 할머니께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실 때는 따뜻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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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하나 없는 어둔 제주의 도로를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여운이 가시질 않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해녀의 부엌에서 보낸 두 시간 삼십 분가량의 시간을 매분 매초 곱씹고 싶었다. 웃고 울며 느꼈던 수십 가지의 낯선 감정들을 다시금 붙잡고 싶었다. 왜 그토록 좋았나 생각해 보면 결국 진정성인 것 같다. 공간을 구성하는 모두가 반짝거리는 눈빛을 하고 진심으로 해녀의 이야기와 종달리 해산물을 알리려고 애쓰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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