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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Apr 10. 2022

내성적인데 활동적이에요


Q. 이번 주말, 어떻게 에너지를 채우고 싶나요?
1)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난다.
2)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각종 MBTI 테스트가 나오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매번 이런 유형의 질문을 만나면 막막해진다. 둘 다 딱히 싫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쪽도 진짜 내 모습은 아니었다. 이 문제가 주관식이었다면 바짝 깎은 연필로 별 고민 없이 이렇게 썼을 것이다.


[혼자 밖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

 나는 다소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꽤 활동적인 편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 약속이 있으면 일요일에는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토요일에 약속이 있으면 일요일은 비었으니 또 다른 일정을 잡아야 했다. 만약 오후에 약속이 있다면, 오전부터 저녁까지 다른 이벤트들로 하루를 채워야 마음이 편했다. 그것은 혼자 하는 일이어도 상관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뒷산을 한 바퀴 돌고, 집에 와서 잠깐 낮잠을 잤다가, 친구를 만나고, 가고 싶던 책방에 들리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에 가는 그런 주말을 보냈다.


 주말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금요일에만 약속을 잡거나 술을 마신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야근만 하지 않는다면 매일매일을 다채롭게 채우고 싶었다. 친구를 만날 때도 있었지만, 등산 모임을 통해 야간 등산을 가기도 하고, 독서모임이나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 혼자서 곧잘 낯선 동네로 향했다. 정~ 할 일이 없다면 퇴근 후 혼자서 명동과 종로 일대를 걸어 다니며 세상을 구경했고, 집 앞 헬스장에 가서 방송댄스나 줌바, 스피닝, 요가, 타바타, 스텝박스 같은 온갖 G.X(Group Exercise)를 섭렵했다. (물론 한 번씩 8시에 곯아떨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땐 신기하게도 시즌마다 마음속 1순위로 급부상하는 새로운 관심사나 취미가 있었고, 그 세계에 폭 빠져 시간을 보냈다. 일상을 비일상으로 만드는 순간을 늘려가는 것이 재미있었고, 딱히 피곤하다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다섯 평에서 일곱 평 사이의 집에 오도카니 혼자 남겨지는 상황이 나를 더욱 피곤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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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어느새 앞서 설명한 모든 문장은 과거형이 되었다. 분명 아직도 맘속엔 에너지가 가득한 것 같은데 예전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일상의 틈에 채워 넣는 일은 대부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인이 함께 경험하고 있는 바로 이 전염병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내 취미 생활은 꽤 많이 무너져 내렸다. 일단, 실내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올바르지 않은 식습관으로 건강의 시소가 기울어갈 때 반대쪽에 놓여 수평을 맞추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G.X 수업이었다. 3면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와 함께하는 운동을 썩 부끄러워하지 않는 나는 정말이지 매 수업 최선을 다해 참여했다.


 뭐, 그뿐인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얼굴 보자.”라는 말을 하는 것이 망설여졌다. 매일 아침 오르내리는 숫자를 확인하고 2주에 한 번씩 발표되는 방역 수칙에 귀를 기울이면 마음이 영 불편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소수로 모여 할 수 있는 야외 활동, 서너 명의 마음 맞는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글만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글쓰기 모임 같은 것들로 일상을 조금씩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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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따르는, 비교적 최근의 이유는 아마도 결혼인 것 같다. 이것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C에 대한 원망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C와 함께하는 일상은 웃을 일이 많고, 그렇게 웃다 보면 특별한 고민이나 걱정거리가 사라진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C에 비해 활동의 반경이 넓다. 오랜 시간 자그마한 방에서 살았기 때문에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을 답답해한다. 둘 다 별다른 일 없이 집에 있을 때, C는 즐겁고 평화롭게 시간을 잘 보내지만, 나는 멍하게 앉아 TV를 보거나, 앉은 자세를 고쳐 잡는 척하며 누워 스르르 잠이 드는 일이 많다. 문제는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꽤나 괴로워진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치르기 전까지는 매주 주어진 퀘스트가 있었는데, 그 커다란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니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니 이제 일상을 보살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저런 궁리를 해 본다. 우리로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으려면, 혼자의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는 반나절 정도는 좋아하는 일을 하러 나서 보기로 했다. ‘혼자 밖에 나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하루를 만드는 거다. 사실, 낯선 책방을 탐험하며 선물 같은 책을 한 권 사고, 커피를 마시는 일 같은 것들은... 혼자 하는 것이 꽤나 재밌다. 이렇게 오롯이 다시 각자를 채우고, 온전한 우리로 다시 한 주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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