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내가 아직 언니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시겠지만

by 이새란



세상 모든 막내를 불러 모으면 막내라서 겪은 설움으로 산맥 하나쯤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방송국에서 막내작가 일을 하던 시절엔 그중 봉우리 한두 개쯤은 막내작가가 쌓아 올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8년 전, 막내작가 동료들은 일한 대가를 상품권 몇 장으로 받기도 하고, PD님 아들의 생일선물을 사러 지하철에 몸을 싣기도 했으며, 크고 작은 문제에 관한 가장 쉬운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찮게만 느껴지는 하루하루였다. 그렇지만, 무너지려는 순간에도 나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작가님’ 하고 불러주는 출연자와, 오랜 경력과 경험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음에도 막내까지 챙겨주는 멋진 선배가 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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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언니는 지금도 ‘프로’라는 단어를 마주하면 떠오르는 사람이다.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한자리를 지켰던 방송인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존재다.


우리 프로그램에는 일반인부터 유명인까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이 출연했다. L언니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출연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표정으로 답하고, 미소 짓고, 눈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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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건 우리 막내들 거. 한 해 수고했어.”


프로의 면모는 화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L언니는 송년회나 명절에 누구보다 막내를 잘 챙겨주셨다. 한 주에 삼십오만 원을 벌며 아침부터 밤까지 사무실을 지키는 우리의 손에, 때때로 작고 큰 선물을 건네주시며 따뜻한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방송일을 그만두고서도, L언니와 몇 차례 식사 자리가 있었다. 언니는 막내들의 연락을 반가워하며, 기꺼이 맛있는 밥을 사주셨다. 시간이 누구보다도 큰 자산인 사람이란 걸 알기에, 그저 감사했다. 면대면으로 소상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으나, 나에겐 커다란 존재였기에 언니는 나의 사회생활에 꽤 커다란 본보기로 자리하고 있다.


그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다. 챙겨야 할 사람이 누군지 살피고, 그 사람을 챙기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챙기고도 생색내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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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휴식기를 가진 L언니를 최근 다시금 화면 속에서 마주한다. 언니의 유튜브 채널도 챙겨보기 시작했다. 언니의 얼굴을 보면 소중한 주변인에게 마음을 아끼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게 된다. 나는 아마도 쭈욱 언니의 팬으로 남을 것이다.



(2021년 7월 2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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