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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May 27. 2022

SKY 입시학원에 크라잉넛이 나타났다

흥의 기원


 2002, 거제시 옥포동 한 골짜기에 자리한 'SKY 입시학원'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이제 초등학생 티를 벗고 진짜 공부를 해야 했나. 부모님의 의도는 그랬을지 모르겠으나, 송구스럽게도 진짜 공부를 하진 않았던  같다. 학원에 앉아 공부하던 장면보다는 단짝 친구들과 학교에서 못다  이야기를 나누고, 학원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닌 기억이  많으니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가수의 단독 콘서트를 관람할 수 있었던 것도 ‘SKY 입시학원’ 덕이었다. 엄하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을 풍겼던 원장 선생님께서 귀한 티켓 몇 장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와 함께 갔는지, 어떤 음악이 가장 좋았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잊을 수 없는 것도 있다. 지금 쿵쿵대는 것이 드럼 소리인지 내 심장 소리인지 분간을 못 했던 생경한 기분도 그렇고, 자그만 극장에서 일어나 방방 뛰면서 느꼈던 흥도 그렇고,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생이 펑크록 밴드의 공연에 등장하니 수군거리던 어른(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들도 대부분 20대였겠지.)들의 표정도 그렇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어나 방방 뛴다고 표현은 했지만 ‘이래도 되나’ 하며 주변의 눈치를 더 많이 봤던 것 같다. 아마도 발을 땅에서 떼진 못하고 무릎만 굽혔다 폈다 하며 남들은 이럴 때 어떻게 흥을 표출하는지 흘깃거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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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그 순간이 내 ‘흥의 기원’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300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시골의 자그마한 극장에서 태어나서 처음 콘서트를 접했다면, 그 공연이 ‘닥쳐’라거나 ‘다 죽자’고 외쳐대는 밴드 ‘크라잉넛’의 공연이었다면, 누구라도 내면 어딘가 깊숙이 자리한 흥의 불씨가 ‘반짝’하고 빛나지 않았을까. 나 역시 무언가, 어딘가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거부할 수 없이 짜릿한 즐거움을 느꼈으니 말이다.     


 이튿날, 크라잉넛 멤버들이 ‘SKY 입시학원’에 등장했다. 알고 보니 원장 선생님께서 크라잉넛의 매니저와 친분이 있으시단다. 무쓰를 진하게 발라 올린 머리와 커다란 피어씽, 현란한 옷차림은 무대 위보다 입시학원에서 열다섯 배 정도 낯설었다. 무섭게 생긴 그 아저씨들은 생각과 달리 유쾌하고 친절했다. 학생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사인을 해주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그들은 당시 스물일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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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토크 프로그램에 크라잉넛의 멤버 한경록이 출연한다는 예고를 보고, 오랜 시간 잊고 있던 2002년 그날이 떠올랐다. 유튜브를 떠다니며 알고리즘을 따라 여러 영상을 보다 보니, 27년간 유지된 인디밴드 시조새 ‘크라잉넛’의 일대기가 담긴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저희 노래를 듣고 신나고 흥이 나서 밀린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영상 속 인터뷰에서, 한경록은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했다. 거창한 음악이 아니라, 듣고서 몸을 일으켜 밀린 설거지를 할 수 있는 만큼의 흥을 주고 싶다고. 27년간 음악을 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어릴 땐 의식하지 못했던 노랫말들도 마음을 파고들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아이가 어느새 삼십 대 중반이 되었으니, 그들의 얼굴에서 세월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표정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나 여전해 놀랐다.     


 우리는 누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어쩌면 여전함이란, 어제와 또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다가 어떤 익숙한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닐까. 그 지점을 알아차리는 순간, 활짝 미소 짓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이 쿵쿵 울리기도 하는,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 말이다.          


 올해는 꼭 크라잉넛 콘서트에 갈 생각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여전한 무대를 바라보며, 나에게 심어준 흥의 불씨가 이만큼 커졌다고 신나게 뛰고 노래하며 보여줘야지.     


“그래도 우린 좋지 아니한가. 바람에 흐를 세월 속에 우리 같지 있지 않나.”


song큐멘터리 백투더뮤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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