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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Jul 29. 2022

나의 룩셈부르크 여행 실패기

진짜 여행을 찾아서

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르헨티나!


귓가를 파고드는 신명 나는 음악을 듣다가, 문득 결심해버린 순간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룩셈부르크에 가고 싶다!’


홀린 듯 ‘룩셈부르크’를 검색했다. 벨기에, 네덜란드와 함께 베네룩스 3국으로 엮이는 나라. 제주도 정도 되는 크기의 소국이지만 독립 국가로 건재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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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는 엑설런트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만 한 크기의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건물 1층에는 할리스가 있었는데, 자그만 방구석이 답답할 때 자주 1층을 찾았다. 아마 그날도 할리스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4학년 1학기를 마친 여름 방학, 대학 생활을 한 학기 남겨두고 1년의 휴학을 계획하던 시기였다.


휴학의 목적은 오직 하나, ‘유럽여행’이었다. 유럽은 넓고도 멀었기에 어디에서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나 막막하던 바로 그때. 우연인 듯 운명처럼 이국적인 다섯 글자 단어가 훅하고 내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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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혼자서 3주간 떠난 유럽여행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아웃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후반부를 조금 여유 있게 보내야겠단 생각에 마지막 도시인 파리에서 5박을 하기로 했다.


룩셈부르크는 귀국 하루 전 당일치기로 방문할 계획이었다.


유럽여행의 마지막 온전한 하루를 룩셈부르크에 쏟고 싶었다. 한국에서부터 파리-룩셈부르크를 왕복하는 기차표도 예약해두었고, 숙소에서 역에 가는 동선도 충분히 파악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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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새란 씨! 어디 가요?”


지난밤 바토무슈(유람선)를 타고 파리의 야경을 함께 즐겼던 룸메이트 언니들이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 내 앞을 막아섰다.


그렇다. 나는 아직 룩셈부르크에 가보지 못했다. 딱히 늦게 일어나거나 허겁지겁 숙소를 나선 것도 아니었는데, 기차를 놓쳐버렸다. 사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생애 첫 나 혼자 여행이 유럽 6개국을 한 바퀴 그리는 일정이었으니 그즈음 꽤 지쳐있었고, 룩셈부르크를 향한 반짝이던 마음도 할리스와 파리의 거리만큼이나 멀어져 버렸다. 풀이 죽어 중얼대듯 말했다.


“기차를 놓쳤어요. 제가 시간을 착각했나 봐요. 그냥 방에 가서 조금 쉬면서 정리나 할까 싶어요.”


“우리 지금 고흐 마을 가는 길인데,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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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30km 남짓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여러 화가가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전 70여 일을 보내고 생을 마감한 곳이라 흔히 ‘고흐 마을’이라고 불렸다.


역에서 바게트와 크림치즈를 사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날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에 가는 길, 그날까지 먹어본 어떤 빵보다 맛있는 바게트를 먹었고, 아직도 얼굴이 그려지는 착하고 배려심 많은 언니들과 함께였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하루는 완벽했다. 자그마한 마을은 눈을 돌리는 곳마다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고, 고흐가 바라보고 그림을 그렸던 실제 공간에 가면 그 작품을 같은 각도에서 만날 수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가 아니었으니 심심할 겨를도 없었다. 작은 공원에 앉아 처음 보는 맥주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지금은 편의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크로넨버그 166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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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룩셈부르크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 덕에 3주간의 여행에서 가장 여행다운 하루를 선물 받았다.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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