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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새란 Jul 22. 2022

붕붕

대화가 필요해

종종 너무 오랜 시간을 붕 뜬 상태로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놀라곤 한다. 하지만 놀란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다시 붕 떠서 일상을 살아내고 만다.


이렇게 지낸 지는 한 해가 넘은 것 같다.


‘붕 뜬 상태’가 항상 멍하다거나 의욕과 영혼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분명 최선을 다해 사는데,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가끔, 정신을 차리면 망망대해나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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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 떠 있는 상태가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두 발이 바닥에 닿아있지 않은 상태로는 무언가 결정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냥 마음에 바람이 부는 대로 휘휘 떠다니다 보면 적당히 달라진 모습의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습관처럼 시도해보는 성격 탓에 항상 무언가는 하고 있었으니까, 딱히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길에 넋을 놓고 걷다가 ‘이토록 무념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상태가 과연 괜찮은 것인가.’ 하고 정신이 번뜩 드는 때가 있다. 대부분은 과거를 되짚어보다가, 꽤 오래전부터 이렇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냥 이게 나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고 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이러다가는 다음번에 정신을 차리면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아이고 우리 손주 예쁘네.”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마음먹은 김에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다. 얼마간은 생산적인 대화가 아니어도, 그저 수다스럽게 생각을 늘어놓기만 하는 것도 괜찮겠다. 깊이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의 상대다. 매일 만나고, 삼시 세끼 함께 밥을 먹고, 어떤 일을 해도 착 붙어있지만, 어쩐지 가장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존재.


‘나’와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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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이면 한 주를 정리하기 위해 카페로 향하던 때가 있었다. 책 한두 권에 노트와 펜, 때로는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챙겨 들고, 자취생의 거실인 한적한 동네 카페에 자리 잡았다. 대단한 것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지나간 한 주를 되새겨보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기록하고, 일주일간 읽었던 책에서 너무 좋았던 문장을 손글씨로 옮겨 적기도 했다. 절반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가십을 읽어 내려가고, 가끔은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시간은 열심히 작동했던 인생의 모터를 잠시 끄고 뒤섞인 생각의 찌꺼기를 침전시키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맑게 걸러진 정신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일종의 리추얼.


이후에는 시간을 쪼개어 많이 걸었다. 특히 퇴근 후 걷는 시간은 머릿속을 비워 생각을 정리할 틈을 만들어 줬다. 명동에 있는 회사에 다닐 땐 종로와 을지로를 헤매며 안국역이나 경복궁역까지 걷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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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삶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려웠다. 일상에 틈이 생기면 스스로와 대화하는 것이 피곤했다. 그저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거나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어차피 흘러가는 인생인데 시기마다 돌아보는 것이 뭐 큰 의미가 있겠나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때가 되면 그제야 이런저런 운동을 하며 몸을 움직이거나,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술을 곁들이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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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붕 뜸’을 문제 상태로 여기게 된 것은 매주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과 그 초안을 다듬어 수많은 동료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에세이 드라이브 덕분인 것 같다. 이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와의 대화가 가장 필요하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매주 글을 쓴 지 1년을 훌쩍 넘긴 지금에야 조금씩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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