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감은 나중. 우선 대화부터 할까요?

말하는 입이 아닌 듣는 귀가 필요한 사회

by 안치형

“진짜 감사해요. 고해성사한 느낌이에요. 솔직히 그동안 되게 힘들었거든요.”



20대 중반의 청년이 저의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다정하게 쥐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대로 한복판에서. 그것도 남자 둘이. 남사스러웠지만 굳이 빼지는 않았습니다. 이제야 웃음꽃이 피었는데 그깟 쪽팔림 쯤이야.


사연은 이렇습니다. 책을 보려고 카페에 들렀습니다. 건너편에 한 청년이 노트북을 켜고 앉아있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카페에서 공부들 많이 하니까 그런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더니 한참 통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눈은 책을 보고 있는데 귀가 자꾸 그쪽으로 향합니다. 한 10분쯤 했나. 통화를 마친 청년에게 슬쩍 다가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IT 관련 일 하세요?”

“네? 아. 네, 뭐 비슷한데요. 그런데 누구...”

“아, 저도 IT 쪽에서 일했었는데 그냥 반가워서요. 혹시 잠깐 시간 되세요?”

“아, 뭐. 바쁘진 않습니다.”



오지랖으로 시작된 청년과의 대화. 한동안은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줘야 하니까요. 다행히 그 청년도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나 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는걸보니. 예상치 못하게 대화가 길어졌습니다.



“별 약속 없으면 저녁이나 드시죠. 제가 살게요.”

“저야, 좋습니다.”



식사 내내 나누던 대화는 2차로 방문한 호프집에서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사실 사람 사는 게 대부분 거기서 거기 아니겠습니까. 일면식 없는 사람이라도 대화하다 보면 공통점 몇 개씩은 있기 마련이죠. 그게 또 반가워서 십분 이야기하고, 이야기하다 또 공통점 나오면 십분 추가되고.


한잔, 두 잔. 어느덧 넉 잔. 잔을 비울 때마다 그 청년의 마음속에 쌓였던 것들도 비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서 호프집을 나왔습니다. 같은 방향의 집으로 걸어오면서 남은 이야기를 마저 했습니다.


“자, 오늘 즐거웠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시간 낭비한 건 아니신지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오늘 진짜 재미있었습니다.”

“하하.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봐요.”

“네, 들어가세요.”



꾸뻑 인사를 하고 돌아가던 청년. 잠시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내 돌아와서 제 손을 꼭 잡습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죠.



일상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처음도 아니었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있죠. 그렇게 알게 된 분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어르신도 있고요. 하긴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대화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호기심이 많았으니까요.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이 온다고 했던가요. 저는 전혀 모르고 살던 누군가의 이야기. 이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 탓인지 저는 지금도 한번 대화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시계도 보지 않고, 핸드폰도 보질 않죠. “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 누군가는 아마 처음 받아보는 관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저한테 속 얘기 들을 하시는지도.


만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막상 쌓아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길 거리가 많은데도 외려 외로움은 늘어나고 있죠. 자존감, 공감. 다 좋은데, 그전에 일단 대화할 상대부터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말하는 입이 아닌, 듣는 귀!


잠시라도 누군가의 ‘듣는 귀’가 되어 주시는 건 어떨까요.





Who am I?

글을 씁니다.

대화를 좋아합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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