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타인의 지적질에 발끈했던 이유
“남들이 지적하면 진짜 싫어하는 거 알지?”
“내가 그런 게 좀 있긴 하지. 그런데 지적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그래도 오빠만큼 싫어하진 않을 걸.”
흠. 다른 이들의 마음에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아내의 말이 틀리지도 않을 테고.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자존심이 강해서? 참견받는 것을 싫어해서? 대체 지적받는 걸 죽어라 싫어하는 이유는 뭘까?
한참 고민에 빠져 있는데 애가 와서 놀아달라고 찡얼댑니다. 성화에 못 이겨 블록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회전목마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놓고, 저렇게 꼽고. 오케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상상 속의 설계도를 따라 하나둘씩 맞춰지는 블록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이가 끼어듭니다.
“아빠, 내가 할래! 줘봐, 줘봐.”
“그래, 네가 해봐.”
“여기에 하면 되는 거지?”
“아니지. 그러면 안 돌아가잖아. 이거부터 해야지.”
“아냐, 이렇게 할 거야.”
“아빤 분명 말했다. 나중에 안 돌아갈 거라고.”
“난 안 돌아가게 할 거야. 왜 자꾸 아빠 맘대로 하려고 해?”
어쭈? 너 재밌으라고 하는 거지 내가 재밌으려고 하나. 하고픈 대로 해라. 역시나 어설프기 짝이 없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얼굴에는 호기심과 재미가 한가득입니다. 별것도 아닌 거에 마음 상할 뻔하다가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누그러들었습니다.
‘하긴, 노는데 정답이 있나.’
아하! 남들이 지적하면 싫어하는 이유. 어쩌면 제 생각만 정답이라 여겨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해가 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모르겠는 건, 바로 화가 나는 이유입니다. 싫다고 다 화를 내진 않으니까요. 싫은 것 이상으로 마음에 거슬리는 게 분명 있을 것 같았습니다.
최근에 겪은 비슷한 상황을 떠올려 봤습니다. 조각모음처럼 하나씩 맞춰지는 장면들. 당시의 제 마음을 이해해 봅니다. 분명 상대방도 나름의 입장이 있으니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데. 뭐 때문에 분노했던 것일까.
자존심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비교당하는 경쟁 일변도의 사회. 내세울 것 없는 제가 마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굳세게 마음을 먹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만하면 나는 잘 살고 있다고.
그 믿음 하나 붙잡고 서있던 저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은 마치 “당신은 잘못 살고 있습니다.”라고 들렸던 겁니다. 마지막 남은 장난감마저 빼앗긴 아이의 심정이랄까. 그렇게 해석이 되니 악다구니가 나올 법도 했습니다.
대체 잘 사는 것이 뭐 길래.
거짓 없이 생각해보니 제 안에는 잘 산다는 것의 기준이 참 많기도 했습니다. 직장, 연봉, 학벌, 하다못해 외모까지. 거의 모든 것에 기준이 있었습니다. 마땅히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는 것들. 솔직히 제가 세운 기준도 아니었습니다. 보고 자랐고, 듣고 배운 것들이니까요.
이래서는 안 된다! 그때부터 남들이 뭐라 하던 제 인생을 위한 저만의 기준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연봉도 막연히 ‘1억’ 이 아닌 실생활을 반영하여 세웠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지만, 막상 저의 가족의 생활비를 계산해보니 딱히 1억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직장도, 자동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로지 저만의 기준이 서니 타인의 말에 발끈할 일이 줄었습니다. ‘나름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확실히 전보다 마음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누군가는 저에게 자기만의 기준을 말할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그런 말에 화가 나려고 한다면 이제는 저를 돌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과거에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들 중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지는 않은지.
Who am I?
글을 씁니다.
대화를 좋아합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