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아닌 인생을 주고받으면서 생긴 변화
간만의 가족 외식. 식사를 거의 다 마치고 마지막 연근 튀김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습니다. 웬걸, 튀김 속에 하얀 밀가루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혹시 잘 못 봤나 싶어 젓가락으로 살살 긁어보니 가루가 떨어지는 것이 영락없이 덜 튀겨진 모습이었습니다.
"저기요. 여기 튀김에 밀가루가 그냥 있네요."
“어머, 죄송합니다. 다시 해 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주방 분들도 미리 알고 계시는 게 좋을 듯해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아, 네. 전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죄송하다며 이빨 자국 깊게 팬 연근 튀김을 접시에 담아 주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적당히 배도 부르겠다, 아내와 아이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음식점 매니저님이 새 덮밥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새로 가지고 왔습니다."
"아, 진짜 괜찮은데요."
“아니에요. 저희 실수인걸요. 맛있게 드세요.”
심지어 처음보다 튀김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보아하니 주방에서 부랴부랴 새로 만들면서 더 신경 써주신 것 같습니다. 덕분에 평소 좋아하는 새우튀김도 무려 4개나 먹었네요. 계산하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신경 써주신 덕분에 너무 기분 좋게 잘 먹고 간다고 말이죠.
예전에는 이해타산을 엄청나게 따지던 저였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다들 장사꾼으로 보였나 봅니다. 따지고 들고, 이겨 먹어야지만 손해 보지 않고 잘 사는 거로 생각했었으니까요. 흥정은 기본이고 수틀리면 성을 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두 번 볼 것도 아닐 테니. 참 약삭빠르게 살던 시절.
언제부터일까. 적당히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딱히 무슨 다짐을 한 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야 하려나요.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고, 엄마이자 아빠일 사람들. 어쩌면 집에 가면 낮 동안 한껏 날카로워진 마음을 봄날에 눈 녹듯 부드럽게 녹여줄 예쁜 아이가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생각하니 시장에서도 굳이 기를 쓰고 깎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물론 넌지시 물어보기는 합니다. 최대한 공손하게. 깎아줘도 그만, 안 깎아줘도 그만이란 마음으로. 태도가 부드러워서 그런 건지 대부분의 사장님은 웃으면서 몇천 원이라도 깎아 주시곤 합니다. 살아가는 얘기를 덤으로 얹어주시면서 말이죠.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큰일이다, 우리 애도 저만할 때 귤 좋아했다, 이러시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사람을 만나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난다기보다는 인생을 주고받기 위해 만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내가 사는 곳엔 이런 일들이 있는데 당신 동네에는 재미난 일 좀 있나요? 저는 여기까지 전철 타고 왔는데, 당신은 어떻게 오가고 있나요?
유치원에 입혀 보낼 한복을 고르면서 이 한복 한 벌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상상을 해봅니다. 과일가게에서는 좋은 물건 받아 오려고 새벽 일찍 경매시장에서 덜덜 떨고 있을 사장님의 모습을 그려 보게 되고요. 편의점에서 갓 고등학교 졸업해 보이는 종업원을 보면, 월급 꼬박꼬박 모아서 학비 대고 생활비에 보탤 모습에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역할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방을 보면서부터 눈 맞추고 인사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감사합니다.” 하고 급히 뒤돌아 나올 때와 눈 마주치고 정중히 인사할 때는 둘 사이에 오가는 기운도 달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만나서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혹자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결혼도 하고 애도 키우다 보니 전보다 희로애락을 경험할 일이 잦아져서 감정이 풍부해졌다는 거죠.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마흔 넘어서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고 고백한 지인도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전부 나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나이 먹고도 여전히 독기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나이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아무래도 지난 1년간 대화모임을 열고 다녀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제를 정할 때마다 저 나름의 주제에 대한 확고한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왔거든요. 처음에는 아닌 척해도 은근히 저에게 동의해주길 바란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횟수를 거듭할수록 누군가의 동의를 얻는 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죠.
‘나는 평생 이렇게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당신은 평생 그렇게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군요.’
이거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모임을 통해 경험한 대화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말보다는 마음을 바라보는 것. 서로 이겨먹기 게임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고 보니 오늘 방문했던 한복집에서도 난생처음 “남편분이 말을 참 예쁘게 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재봉틀을 돌리던 남자분도 나오셔서 “요즘에 훌륭한 아빠들이 자주 오네요.”라고 말을 걸어오셨고요. 별 대단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맞아요, 요즘 장사 잘되는 곳이 없어요.”
“다른데 다 가 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네요.”
“그렇죠. 이렇게 예쁜 한복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장사가 안된다, 마트에서 한복 보고 여기서 비싸다고 한다고 푸념하시는데 그 마음이 느껴져서 맞장구쳐 드렸을 뿐입니다. 그랬더니 카드로 계산했는데도 가격을 깎아주셨습니다. 서비스로 장신구도 두 개나 주셨고요. 심지어 깎아 달라고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장사수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해준 이야기는 진심이었을 겁니다. 장사는 힘들 테고, 많이 깎아 볼 요량으로 시비 거는 사람들도 많았을 테니까요. 얼마나 힘 빠지고 언짢으셨을까요. 다른 데보다 몇만 원 더 받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예쁜 한복을 직접 만들어서 팔고 계시는데 말이죠. 틀린 말 하나 없잖아요. 그리고 또, 장사수완이면 어때요. 서로 기분 좋았잖아요. 그럼 된 거죠 모.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장사꾼 아니던가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더 좋은 거 먹고, 더 좋은 거 입고 싶고, 본전 생각에 가슴 아파하는 장사꾼들. 반면 천사이기도 하죠. 조금만 내 마음 알아줘도 그새 기분 좋아져서 없던 것도 만들어서 퍼주는 마니또 같은 천사 말입니다.
장사꾼이냐 천사냐. 어쩌면 내 마음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Who am I?
인생작가.
딱히 자랑할 게 없어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씁니다.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