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곪지 않고,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설 연휴가 벌써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새해 목표를 세운답시고 과거를 곱씹고 미래를 꿈꿨던 게 정말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그동안 나는 무얼 했던가. 최선을 다해 작심삼일 했던 것 같습니다.
계획과 달리 자꾸만 미루는 것들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두꺼운 개론서를 사놨더랬죠. 한 20페이지 읽었을까, 책갈피는 마치 흔들바위처럼 갈 듯 갈 듯 도무지 다음 장으로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틀어놓은 영화들은 어찌나 박진감 넘치던지. 자막을 켜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네요.
독서, 아 독서. 1월에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새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습니다. 2주 안에 1차 탈고를 해야 해서 원고수정만 했었거든요. 대신 지난날 필사해 놓은 노트를 닳도록 봤습니다. 운동, 말할 것도 없죠. 원래 운동은 일주일에 한 번이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사니까요. 그래도 일 년에 52번, 10년이면 520번이잖아요.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합니다. 평소에 더 걸으면 되죠.
인맥 관리. 그 성격 어디 가나요. 이제 와 새삼 연락 돌리면서 안부 묻는 게 더 웃긴 것 같습니다. 다만 만날 일 생기면 전보다는 더 그 사람에게 말 할 기회를 주고, 커피값도 웬만하면 제가 먼저 내려고 합니다. 축하할 일 생기면 바로바로 챙기는 것도 빼먹지 않을 거고요. 올해도 인맥 관리는 제 스타일대로 할 듯.
계획에는 없었지만 잘하고 있었던 것들
반면 매일 한 것도 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매일 글을 써왔습니다. 원고는 말할 것도 없고, 블로그도 하고, SNS도 합니다. 남의 회사 블로그에 돈 받고 글 써주는 일도 빠질 수 없죠. 어쨌거나 글은 손에서 놔 본 적이 없습니다.
2년 전,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하면서 지금까지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덕업일치를 이루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하곤 했는데, 요즘엔 어쩌면 저도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끼 식사도 빼먹지 않고 했네요. 이게 참 대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 중요한 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삼시 세끼 그 나물에 그 밥만 먹는 것도 아닙니다. 고기반찬도 자주 먹고, 냉장고의 아래서 두 번째 칸에는 제철 과일도 늘 준비해 놓죠. 가끔 샤인머스켓 사 먹는 사치도 부리고요.
가족과 매일 대화를 하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네요. 아들은 저를 닮아서 말이 많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가 가장 과묵하죠. 하루 2만 단어를 쏟아내야 잠이 드는 시끄러운 두 남자가 사는 집은 매일 토론장을 방불케 한답니다.
말하다 보면 웃을 때도 있고 성낼 때도 있죠. 그래도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아무리 십 년 가까이 같이 산 아내라도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오늘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폭풍 성장하고 있는 아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뭐야, 꽤 잘 살고 있었잖아. 잘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꾸준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퇴사하고서도 여전히 우리 가족 먹고살 돈은 벌고 있습니다. 하루 세끼, 꼬박꼬박 균형 잡힌 식사도 하고 있고요. 가족과의 유대를 위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빼먹질 않습니다.
그러면 새해에 세웠던 계획들은 도대체 뭘 위했던 것일까.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니 분명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더 많이 공부해서, 더 많이 돈 벌기. 왜냐하면, 나중에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계획이라니. 어쩌면 인생에 사족 같은 것을 목표로 세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먹고 자는 게 전부는 아니겠죠. 호기심도 채우고, 지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으면 더 좋겠죠. 이런 것들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지금 행복한 것은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 세워 놓은 계획을 조금 못 지켰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런 태도를 ‘게으름’이라 여기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줄로 압니다. "현실에 만족하면 쓰나, 더 나은 미래를 꿈꿔야지." 그 미래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텐데.
1월이 거의 다 지나간 오늘. 계획한 것들을 이루지 못해서 잠시 자책할 뻔했습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전혀 그럴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배 곪지 않고,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 보내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생길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전까지는 이만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하며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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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