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경쟁도 종류가 있더란 말이죠

죽기 살기로 안 싸워도 살아지는 세상

by 안치형

죽기 살기로 경쟁했던 기억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모두 일상적으로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체육 시간에 농구를 할 때였습니다. 고 나이 또래 특유의 승부 근성으로 죽어라 골을 넣으려 뛰어다녔습니다. 악착같이 수비를 하고, 기어이 공을 빼내서 상대의 코트로 향했습니다.


슛! 골을 넣고 상대편의 속공을 막기 위해 다시 죽기 살기로 우리 편 골대 밑으로 뛰어갔죠.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불현듯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불현듯!)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었습니다. 나 한번, 너 한번 해도 되는데, 뭘 그리 이렇게까지 헉헉거리면서까지 뛰고 있나.


“나 그만 쉴래.”


그날 이후로 농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구기운동도 그렇게 하나둘씩 끊었습니다. 대신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택했습니다. 예를 들면 턱걸이라든지 평행봉이라든지 말이죠.



고등학교 때에는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죽기 살기로 공부했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워버리곤 했죠. 말 그대로 씹어 먹었습니다. “성적 나왔대!” 복도로 다 같이 우르르 뛰어나갔습니다. 두근두근. 5등 김xx. 6등 안치형. 전교 6등! 기쁘긴 한데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멀뚱히 서 있는 제 주위로 축하인지 질투인지 경멸인지 모를 대화들이 오갔습니다.


'아, 싫어.'


조퇴와 결석을 하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대신 한강으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햇볕 아래 가만히 앉아서 강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가끔 강바람에 실려 오는 특유의 비린내. 그리고, 물비늘. 어쩜 그렇게 애쓰지 않고도 찰랑찰랑 윤이 나던지.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직장인이었을 때였습니다. 공을 들인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성공한다면 한국법인에서 첫 번째 사례가 되는 일. 직장보다는 고객사로 출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고객들과 술을 마셨죠.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들이 저에게 꾸뻑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가 자기 회사 선배인 줄 알았답니다.


계약은 성사되었고 전 세계 170여 개 지사에 소식이 퍼졌습니다. 미국에서, 싱가포르에서, 인도에서, 중국에서 프로젝트 문의가 쏟아졌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다시 잠잠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로도 몇 번의 프로젝트들을 더 성공시켰습니다. 될 만한 일들에 공을 기울였습니다. 어느덧 목표는 100억 가까이 되었습니다. 영업사원에게 높은 목표는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자랑거리이자 스트레스의 근원이니까요. 경쟁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다양해져 갔습니다.


수능점수 몇 점 나왔어? 학교 어디 나왔어?

골프 스코어가 몇이야? 회사 어디 들어갔어? 연봉이 얼마야?

올해 타겟 얼마 받았어? 처갓집 어디야? 아내는 무슨 일 해?

애 유치원 어디 다녀? 자가야 전세야?






경쟁이 없는 곳을 찾아서

칼은 잡은 사람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죠. 관계도 누구에게는 화평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누구에게는 무한경쟁의 도구로 사용되는가 봅니다. 제가 살고 싶은 세상은 경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승진을 하자마자 퇴사를 했습니다. 그 세상을 찾기 위해.


나와 보니 경쟁이 없는 곳이 없었습니다. 다만 종류가 다양해서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보다 더 치열하게 경쟁할 수도 있고, 1,000분의 1로 줄일 수도 있었죠. 당연히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경쟁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마음은 홀가분합니다. 경쟁의 강도가 확 줄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책을 쓰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자신과의 경쟁은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어금니가 떨어져 나가는 통증이 올 정도로 극심한 창작 스트레스도 받긴 했지만, 예전에 받았던 스트레스와는 종류가 달랐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괴로웠는데 혼자서 하는 경쟁은 마음은 괴롭지 않았거든요. 죽고 싶은 스트레스가 아니고 우쭈쭈 해야 할 스트레스라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대상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니까요. 보이지 않는 신경전 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적인 비교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 다칠 일도 줄었습니다.


타인과의 경쟁이 삶의 원동력인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살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이 싫어서 대열에서 이탈했는데, 웬걸 새로운 세상이 있었습니다. 경쟁방식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말이이죠. 정말 걱정 많이 했었는데, 순위에서 벗어나도 인생에서 탈락하는 것은 아니었네요.






Who am I?

인생작가.

딱히 자랑할 게 없어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씁니다.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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