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자신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우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릅니다

by 안치형

조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조심스레 고백하건대, 아마도 저는 성격장애의 A 군에 속하는 조현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DSM-5(미국 정신의학 협회 발간, 한글판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제5판)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책을 제가 직접 사서 본건 아니고, 관련 책을 보다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저와 같지는 않은지 진단 기준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다음 중 4개 이상 일치하면 여러분도 저와 손잡고 같이 하얀 집에 가실 수도 있는 겁니다. 으스스하시죠?백문이 불여일견, 한번 읽어 보시죠.


<조현성 성격장애 진단 기준>

1. 친밀한 관계를 원하지도 즐기지도 않음

2. 거의 항상 혼자서 하는 활동을 선택함

3. 다른 사람과 성 경험을 갖는 일에 거의 흥미가 없음

4.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활동에서만 즐거움을 얻음

5. 직계가족 외에는 가까운 친구나 마음을 털어놓는 친구가 없음

6. 타인의 칭찬이나 비판에 무관심해 보임

7. 정서적인 냉담, 무관심 또는 둔마(감정이 무딘)된 감정반응을 보임


각각의 항목도 그 안에서 강도의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절대평가로 보면 저는 가까스로 합격(?)했습니다. 4개 항목에 O표시를 했거든요.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도 분명 ‘헉’ 하시는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은 ‘휴우, 난 정상이네’ 하고 넘어가실 수도 있고요. 하지만 성격장애가 어디 저것만 있겠습니까? 추가로 몇 가지 성격장애들을 주요 특징과 함께 적어 보겠습니다.


- 편집성 성격장애: 지나친 과민성, 타인에 대한 강한 불신과 의심

- 조현 형 성격장애: 관계망상, 괴이한 믿음이나 마술적 사고(미신, 텔레파시, 육감 등)

- 반사회적 성격장애: 반복적 거짓말, 가명 사용, 폭력적, 호전적, 타인에게 상처 입히고도 무관심함

- 연극성 성격장애: 애정과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나친 노력, 지나친 감정표현, 관계의 중심이 자신이어야 함, 피상적 인간관계

-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신에 대한 과장된 평가, 광범위한 합리화, 자신을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

- 경계성 성격장애: 강렬한 애정과 분노가 교차, 만성적 공허함, 대인관계나 자아상 및 정서의 불안정

- 강박성 성격장애: 지나치게 완벽주의, 과도한 성취지향, 근면하나 융통성, 자발성, 창의성 부족

- 의존성 성격장애: 의존적, 복종적이고 매달림, 자기비하, 외로움이나 버림받는 것을 피하려고 어떤 위험도 감수, 자신의 연약한 모습으로 지지와 보호를 유도

- 회피성 성격장애: 만남에 대한 불안감, 자발적으로 사회와 격리, 타인의 부정적 평가를 두려워함, 수줍음과 걱정이 많음, 늘 조심스러워서 함, 자존감 부족, 자신의 성취를 평가 절하


근대심리학의 시초는 철학입니다. 관념의 학문인 철학에서 시작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심리학이 된 것이라고 하죠. 현대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고, 밝혀지지 않던 것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실험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역사는 140여 년 밖에 안됐지만, 세부 학문은 수십 개가 넘고 이론만 벌써 10,000여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과학적 근거도 빈약한 ‘혈액형에 따른 성격’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는 말이죠.



상황과 맥락이 중요 합니다


성격장애 진단은 많은 실험관찰을 통해 알아낸 것들일 테니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단 상황과 맥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현성 성격장애 진단기준의 6번에 일치합니다. ‘6. 타인의 칭찬이나 비판에 무관심해 보임’ 그러나 선뜻 그렇다 라고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때그때 다르니까요.


예를 들면, 상대방과 저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저와 매우 가깝고, 오랜 기간 알아 온 사람들의 말이라면 아닌 척해도 귀담아듣습니다. 6번 항목에 X 표를 그었겠죠. 그 반대의 경우는 6번에 O 표시를 할 테고요.


상대의 의중도 중요합니다. 부부싸움의 경우 진심이 담겨있습니다. 발전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저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봐야 하니 경청을 합니다. X입니다. 반면 면접의 경우, 대부분 면접관이 피 면접관을 떠보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의 칭찬이나 비판은 저는 과감히 패스합니다. 딱히 얼굴 빨개질 일도 없죠. 감정이 고요합니다. O입니다.


상대의 성격도 중요합니다. 늘 비판적인 사람이거나 늘 칭찬을 일삼는 사람의 비판과 칭찬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날을 세우거나, 남을 세워줄 사람일 테니까요. 이럴 경우는 X입니다. 반면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진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해주는 보석 같은 충고는 귀담아듣습니다. O입니다.



그때그때 다른 것이 정상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상황과 맥락에 놓입니다. 대쪽같이 일관되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 편이며,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그때 다른 것이 정상입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생각합니다. 부분 간의 시너지도 있을 테니까요. 심리학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입니다. 수만 가지 지혜 중에, ‘나’를 이해하려는 지혜에서 파생된 것이 심리학입니다. 10,000여 개의 이론을 모두 합해도 결코 '나'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DSM-5에 실려 있는 내용은 분명 많은 실험과 검증을 거쳤을 겁니다. 신뢰도가 상당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70억 인구가 매일 겪고 있을 수백 가지, 어쩌면 수천 가지의 맥락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조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말이죠.


바야흐로 자존감을 넘어 공감의 시대입니다. 다양한 기준과 대처방법이 나오고 있습니다. 위로받는 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에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는 결코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고, 일목요연하게 규정될 수 있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니까요.


지금껏 생긴 대로 살아도 별 문제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서, 우연히 저랑 잘 맞는 사람들 만나서 울고, 웃으며 살랍니다.





Who am I?

인생작가.

딱히 자랑할 게 없어서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씁니다.


"당신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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