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신을 차별대우하지 마세요

나를 무시하는 말 한마디에 스스로 마음을 닫아 버린 경험

by 안치형

■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 나를 무시하는 그 한마디에 닫혀버린 마음


잠시 미국에 있었을 때 알고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마이클. 전형적인 덩치 좋고 운동 잘하는 백인남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그런 타입 말이죠. 알고 보니 마이클의 할아버지가 6.25에 참전을 하셨더군요. 그래서 한국인인 저에게 금방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친구 덕에 처음으로 파티에 가봤습니다.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줘서 찾아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인기 많은 친구를 둔 덕분에 자기소개만 한 백번은 했던 거로 기억합니다. 두 시간 후. 더 늦기 전에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한껏 멋을 부린 여학생 세 명이 저에게 다가오더군요.


“너 마이클하고 친한 것 같던데 혹시 걔 지금 어디 있는지 아니?”


‘걔가 어디 있더라?’ 잠시 생각을 하는데 그중 한 명이 “쟤 지금 우리가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어?”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졸지에 영어 못하는 사람이 돼버렸습니다. 토익 위주로 공부한 사람들이 말은 잘 못 해도 리스닝 실력은 좀 된다는 것을 몰랐겠죠.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피곤한데 잘됐다 싶어서, 어깨 한번 으쓱 해주고 갈 길 갔습니다.


뭐라고 하는지 다 알아듣거든!!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그 친구의 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말 못 한다고 무시하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곤 했으니까요. 눈빛 하나, 태도 하나까지 다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어차피 영어 못하는 사람이잖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꺼려지더라고요. 스스로 차별을 가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괜히 혼자 눈치 보고 작아지는 느낌.


그러다 한 가정의 추수감사절 식사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부모형제, 사촌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에 말이죠. 맙소사. 또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는 건가. 예상과는 달리 모두 저를 환대해 주었습니다. 제 한마디 한마디에 경청을 해주고, 미국에 온지 몇 개월도 안됐는데 벌써 영어를 잘한다며 치켜세워주더군요. 사람이 간사한 게 칭찬받으니까 그때부터는 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잘 하는 거야.’ 자신감 뿜뿜. 지금도 외국인이 지도를 들고 인상을 쓰고 있으면 먼저 다가가서 길을 알려주곤 합니다.




■ 내 안의 차별을 걷어내야 합니다

- 세상에 만연한 차별, 그 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차별의 사전적인 의미는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따돌리고 격리시키는 것’ 이라고 합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저 역시 편견으로 타인을 차별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아이와 관련된 일의 경우 더 그렇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다 못해 오징어처럼 돌돌 말려버리니까요. ‘죄송합니다만, 그래도 귀여운 내 새끼 아닙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거죠. 자식 키우는 부모님들은 다 이해하실 겁니다.


맘 약해질까봐 차라리 안 볼란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눈가리개를 한 이유. 아마 눈을 뜨는 순간부터 편견이 가득해 질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차별을 당해왔나요. 학교에서, 직장에서. 어디에서라도. “당신 자식이라도 그럴 거냐!”라고 아무리 외친들, 그 사람의 자식이 될 수는 없잖습니까.


솔직히 우리도 좋은 거 있으면 자식한테 먼저 해주고 싶잖아요. 차별 없는 세상? 글쎄요. 저도 그런 세상을 꿈꾸긴 합니다만, 과거를 보나 현재를 보나, 아니면 저를 보나, 그런 세상은 쉽사리 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력은 해야죠. 더 좋은 곳으로 나아는 가야죠.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겠지만 말입니다.


세상에 가득한 차별보다 심각한 것은, 그런 차별에 익숙해져서 자신에게 스스로 차별을 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하니까. 키가 작으니까. 돈이 없으니까. 좋은 학교를 안 나왔으니까. 얼마나 많은 차별을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지. 세상의 차별만으로도 충분히 억울한데 스스로에게 차별을 가한다면 대체 나는 누가 지켜준단 말인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슈퍼히어로 일지도


자기 한계에 못 미치는 삶을 사는 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숨 쉬는 공기처럼 차별이 익숙해서 언제부턴가 자신을 낮게 평가하기 시작한 건 아닐까. 왠지 모를 측은함과 동질감이 느껴집니다. 어디서 한 소리 들었었나 보다 싶어서 말이죠.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하죠. 가정이 바로 서려면 그 안에 우리 각자가 바로 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꼭 나라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내가 나를 위로해 주지 않으면 누가 위로해 주겠습니까.






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대화와 글쓰기, 산책을 좋아합니다. IBM, LG, P&G 등 4곳에서 영업과 기획을 했고, 옷 장사를 했고, 전국에서 토론모임을 열었습니다. 1,000여 명과 대화를 나누면서 개성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르면 4월, 개성을 주제로 한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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