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잡식성 인간의 글쓰기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저 이도 옳구나
■ 이 흥을 어떻게 하면 발산할 수 있을까
- 무대에 오르지 않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을 가리켜 ‘입이 짧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땡볕에 한껏 녹아 늘어질 대로 늘어진 엿가락처럼 입이 매우 긴 편입니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도 마찬가지죠. 봄바람처럼 서정적인 발라드도 좋아하고, 한여름의 폭풍우처럼 심장 떨리듯 강한 비트의 클럽뮤직도 좋아합니다. 뮤지컬 음악도 빠지면 섭섭하겠죠.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2300번쯤 한 것 같습니다만, 그러진 못했습니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기도 싫어하는데 춤까지 춰야 한다니. 언뜻 보기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다분히 내향적인 제가 배우가 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아무튼 제 안에 있는 흥을 어떻게든 발산하려고 하던 참에 발견한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이 정도의 뻔뻔함과 당당함이 있어야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존경합니다 모든 배우님들
딱히 재능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습니다. 어떻게 알았느냐면, 써보고 알았습니다. 일필휘지로 한 번에 좍 써 내려가기는커녕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치고, A4 한 장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리는 것을 보니 답이 딱 나온 거죠.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구나.’ 하지만 가수만 노래방 가란 법 없듯, 작가만 글 쓰란 법 없잖습니까? 그래서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1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썼습니다. 처음에는 비판적인 글을 많이 썼습니다. 이 사회가 어떻고, 사람들이 어떻고. 괜히 스스로 심각해지면서 말이죠.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그런 글을 쓰면서 자아도취를 했던 것 같습니다.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죠. 한 참 후에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비판이란 것을. 그런 글은 상대의 치부를 드러낼 수는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 기왕 쓰는 거 기쁘고 희망적인 글을 쓰자
- 음식 가리지 않고, 음악 가리지 않는 잡식성 인간의 글쓰기
‘나는 왜 음악을 좋아하나?’ 이 질문이 마음속에서 떠올랐습니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희망찬 기운이 차오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비록 몸치지만 뮤지컬 배우를 꿈꿔보기도 하고 말이죠. '그래, 앞으로 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희망을 주면 좋겠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심지어 재능도 없으면서.
식성 까다로운 지인과 점심 메뉴를 고르는 상황을 그려봤습니다. 저는 메뉴 선택에 있어서는 몽골초원만큼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왜냐하면 입이 엿가락처럼 길디기니까 말이죠.
“너 좋아하는 거 시켜. 난 다 맛있으니까.”
입맛 까다로운 사람에게 저처럼 편한 식사 상대가 있을까요. 대화할 때도 그렇습니다. 가리는 장르도 없고 편견도 별로 없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못 들을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거 주세요. 저건 싫어요. 내 맘대로 들어 주세요!!
대화를 나누는 것과 밥을 먹는 것, 음악을 듣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입맛 까다로운 분들은 대화를 나눌 때도 취향이 확고한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개성 뚜렷한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김밥 먹을 때 오이 골라내고, 음악도 좋아하는 장르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걸 누가 좋다 나쁘다 한답니까. 자기가 그러고 싶다는데. 오히려 좋고 싫음이 명쾌하니 예측이 쉬워서 좋지 않나요.
저처럼 음식도, 음악도 딱히 가리는 것 없는 사람은 대화도 비슷합니다. 주제를 별로 가리지 않습니다. 모르는 이야기라도 듣고, 자기 자랑도 듣고, 좀처럼 소화하기 힘들 것 같은 이야기도 딱히 가리지 않고 잘 듣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한국사회에는 금기시 된 그런 것들 말이죠. 지면을 통해 쓰기는 좀 곤란한 그런 이야기들.
‘포용’이라는 단어는 저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 고급져 보여서 말이죠. ‘잡식’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음악도, 대화도 잡식인 제가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당신도, 나도, 저 사람도 모두 옳다.’라고 쓰면 되니까 말이죠.
우리 흥민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형이 격하게 아낀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상대를 평가하면서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는 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되는 글. 독자가 ‘나도 내 마음대로 생각해도 되겠구나.’라고 격려가 되는 그런 글 말이죠. 가장 저다운 글을 쓰면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대화와 글쓰기, 산책을 좋아합니다.여러 회사에서 영업과 기획을 했고, 옷 장사를 했고, 전국에서 토론모임을 열었습니다. 1,000여 명과 대화를 나누면서 개성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9.5월, 개성을 주제로 한 책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 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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