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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Jun 17. 2019

게으른 가족 이야기

백만 가지 장점을 압도하는 게으름

아내가 그럽니다, 저희 부부는 팀워크가 끝내준다고. 저는 베푸는 것에 둔합니다. 딱히 베풂 당하고 싶지도 않고 베풀고 싶지도 않은, 매우 정적인 상태라고나 할까요. 반면 아내는 베푸는 것을 좋아합니다. 받은 것이 있으면 마땅히 되돌려 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비위를 맞추는 문제에서는 또 반대입니다. 저는 오랜 영업 생활 및 타고난 수다 기질로 누구를 만나든 비위를 잘 맞춰주는데 아내는 무사 집안 출신입니다. 실제로 장인어른 보면 관우의 환생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처남은 조자룡 느낌이랄까요. 호불호도 강하고 표정 관리도 약합니다. 필요가 없죠. 수틀리면 청룡언월도로 한 방에 뎅강 해버리면 끝이니. 옛날이었으면 말입니다. 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인 거죠.


내 딸을 데려가고 싶다고 했나?


여하튼 이런 끝내주는 팀워크 덕에 저희 가정은 주위로부터 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왜냐면 서로의 단점은 커버하고 장점이 극대화된, 소위 기적의 자웅동체인 ‘가정’으로 본어게인 했으니까요. 결혼 후에는 개인 간의 만남보다는 가정 간의 만남이 잦아지는데, 어떤 가정과 만나더라도 잘 어울리게 되었달까요. 마치 양손잡이 권투선수처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능수능란하게 경기를 펼쳐 나갈 수 있게 된 거죠.



물론 단점도 있죠. 멘델의 유전법칙 다들 기억하시죠? 하실 거예요. 아래 콩 그림에서 노란색을 저희 부부의 장점, 초록색을 단점이라 가정해 봅시다. 좌측 그림 하단 부분에 녹색 콩들 보이시죠? 저 새....저 헐크 같은 녹색 콩들이 다른 수백천만가지의(훗) 장점의 사각지대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저희 가정의 치명적인 단점들인 셈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바로 게으름. 저희 부부는 평소에 주로 바닥에 붙어 있습니다.  아내는 침대에서, 저는 쇼파에서,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아무데서.


좌측 하단 green 컬러의 ge-e-ren(게으른) zone


그래서 저희 가정은 약속을 굉장히 버거워 합니다. 학창시절에 학교에 교육감 뜨면 며칠 전부터 쓸고 닦고 해야 하잖아요, “그럴 바엔 안 만나.”가 저희 집 스타일입니다. 다들 잘 챙겨주는데 안 만나. 밥 사줄 테니 나오래도 안 만나. 귀찮아. 가끔 마음이 동해서 “가볼까” 싶어도 애가 귀찮아해서 또 못 만나. 막상 만나면 남편이 엄청 비위 잘 맞추고, 아내가 되게 잘 베풀고 하는데 (아들은 그냥 아들아들), 사람들을 만나지를 않아서 저희는 오늘도 방바닥에서 행복해 하고 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독'과 '공유'는 작가에게 큰 이 된답니다 :)      


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대화와 글쓰기, 산책을 좋아합니다. 여러 회사에서 영업과 기획을 했고, 장사를 했고, 전국에서 토론모임을 열었습니다. 2019.6월, 개성을 주제로 한 책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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