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놈을 보고 느낀 점
몇 달 전, 아내와 영화 ‘베놈’을 봤습니다. 숙주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우주괴물들. 인간도 그들에게는 한 끼 식사에 불과하지만 그중 하나(베놈)가 우연히 주인공(에디 브록)의 몸에 기생하면서 생각을 바꿉니다. 주인공의 정의감에 매료되어 공생을 택한 것이죠. 다만 옛 습성은 못 버렸기 때문에 주인공과 타협을 합니다. 착한 인간은 놔두고 나쁜 인간만 가끔씩 먹기로.
베놈의 영화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힘센 사람은 나쁜 사람의 머리부터 먹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할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영화는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았던 청소년들에게 괜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가만 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였습니다. 아, 권선징악!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이야기. 모든 일에는 사정이 있기 마련인데, 나쁜 사람의 사정은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타고나길 교활하고 못돼 처먹은 인간이라 당해도 싼 존재로 묘사가 될 뿐.
약육강식도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만화영화가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적에게 당했으나 결국 힘을 길러 나쁜 놈을 모두 처치하는 이야기. 역시 나쁜 놈의 사정엔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배려와 관용이 없죠. 지구 평화를 위해 일단 처단되어야만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적자생존도 머리를 스치더군요. 베놈은 괴물들끼리 있을 때는 매우 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숙주로 삼은 에디 브록은 지구인 중에서는 상남자에 속했죠. 이 둘이 한 몸이 되자 베놈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더욱 강해집니다. 반면 괴물들의 우두머리는 약한 인간을 숙주로 삼았기 때문에 약해졌습니다. 결국 베놈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정의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동료들을 배신했거나 말거나 살아남았으면 승리자인 겁니다.
권선징악과 약육강식 그리고 적자생존. 꼬꼬마 시절에 당연시 여겼고 성인이 돼서도 한동안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았던 것들입니다.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가야 하는 이유. 부끄럽게도 자아실현도 지구 평화를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살아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동료보다는 경쟁자가 많았습니다. 시기 질투가 만연했고 편 가르기와 줄 서기가 일상이었습니다. 태생적으로 경쟁을 싫어하는 저에게는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른이 넘은 나이에 대열에서 일탈했습니다. 일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일탈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잠깐의 이직이 아닌 영원한 퇴직을 했으니까요.
일탈을 하고 나니 제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되었습니다. 무찔러야 할 악도 없었고,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도 없었습니다. 매사가 개척이라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과정에 대한 존중은 곧 삶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졌습니다. 처음으로 일하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난생처음 자유를 느꼈습니다. 정확히는 동대문시장에서 물건을 떼고 돌아오던 새벽 3시, 가랑비 내리던 신당역 뒷골목에서 느꼈습니다. 그동안 막연히 상상해오던 티 없는 파란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상처 난 빛바랜 검붉은 색에 가깝더군요. 불안과 고독이란 대가를 치르고서야 알게 된 자유. 한번 맛보니 두 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성공을 영화에 빗대어 말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성공이란 포레스트 검프처럼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자기 길을 꾸준히 가는 것입니다. 쇼생크 탈출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처럼 자기만의 기준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베놈은 절대, 절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