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죽어서도 기억이 살아 있다면

by 안치형

시속 81km로 달리다 문득 저만 멈춰버렸습니다. 극심한 허무와 함께. 방금 전까지 분명 떠나갈 듯 기분이 좋았는데, 참 이상했습니다. 계약 확정은 아니었지만 한 출판사의 편집자로부터 원고에 대한 칭찬을 받고 오는 길이었거든요. 그간의 수고를 일시에 보상받은 것만 같았죠. ‘이러다 베스트셀러 작가 되면 어쩌지?’ 되지도 않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자유로를 지나 강변북로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네비 때문에 거치해놓은 휴대폰에 카톡 메시지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병원 다녀와서 알려줄게.’ 그러고 보니 장인어른의 CT 결과를 확인하는 날이었습니다. 2주 전. 간단한 시술을 받으러 동네 병원에 들르셨다가 예상치도 못한 혹을 발견했습니다. 상급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진행했고 오늘 결과 확인하러 가시면서 메시지를 보내신 겁니다.


처음부터 악성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했으니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결과를 보기 전까지는 목에 걸린 가시 같긴 했죠. “이젠 진짜 은퇴해야겠다. 알던 사람들도 다 나갔고, 젊은 애들도 치고 올라오고. 잘됐어, 이젠 나도 좀 쉬어야지.” 5년 전부터 하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 관두지 못하신 이유는 바로 가족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우리네 아버지의 삶. 마지막 순간에 화려한 은퇴식은 고사하고 암 진단 결과 확인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금쯤 장인어른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얼마나 씁쓸하실까.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다른 차들이 제 차를 쑤욱 앞질러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제 차의 속도만 갑자기 줄어든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를 줌 아웃하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달려가는 인생. 저만 갑자기 더 이상 나눌 사연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



난 왜 이곳에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원고를 썼을까? 왜 미래를 상상하며 기뻐했을까? 대체 뭐를 위해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어차피 죽고 나면 모두 사라질 것들인데.



극한의 허무가 순식간에 온몸을 휘감으려는 찰나,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일주일 걸린데. 의사 놈들 믿을 수가 없어ㅋ’ 아, 그렇구나. 기대였구나. 언젠가 사라지고 없어질 것들이 아니라, 아직 본 적 없는 것들에 대한 기대로 나는 살고 있었구나.


며칠 뒤. “여보, 내가 최근에 신기한 경험을 했어. 죽고 나면 기억도 못할 것들을 위해 살아갈 인생. 그 허무함을 너무 생생하게 체험했어.” 이어 제가 얻은 교훈에 대해 말하려는 찰나, 아내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죽고 나면 모두 잊을 거라 생각해?” 이건 또 무슨 질문이란 말인가. “죽고 나면 모두 잊을 거라고 누가 그러는데? 만약 영혼이란 게 있다면? 육체와 다르게 영혼은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예고 없이 훅 들어온 질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네요. 죽고 나면 기억을 모두 잊게 될지,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간직하게 될지 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요. 만약 영혼이 있고, 죽어서도 기억을 간직한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니까요.




왜 그동안 아무 의심 없이 죽고 나면 모두 기억에서 잊힐 거라고만 생각했을까요. 도깨비 때문에? 신과 함께 때문에?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남기지 말자."라는 말, 저부터라도 다르게 써볼까 합니다 “이승의 후회는 죽어서도 따라다니니 후회 남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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