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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Sep 14. 2019

꿈속에 살다

계속 꿈을 살아내다 보니 어느덧 꿈속에 살고 있더라

예전엔 습관처럼 미래를 꿈꿨다

여행을 다녀왔다. 마치 숲속같지만 몇 걸음만 옮기면 바로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노니는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한적한 것을 좋아하고 풀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꿈만 같은 곳. 돌이켜보면 지금껏 꿈꿔 온 것이 한둘이 아니다. 시간의 배를 타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그 상황에서 가장 간절했던 꿈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 공부 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생이 되길 꿈꿨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군대 문제가 해결된 전역자를 꿈꿨고, 전역 후에는 토익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직장인을 꿈꿨다. 직장인이 되고서는 더 좋은 직장을 꿈꿨고, 미혼을 벗어나 기혼자가 되길 꿈꿨다. 결혼 후에는 아이를 갖길 꿈꿨고, 아이가 생기자 가능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되길 꿈꿨다.


매 순간 목표가 있었다. 그 목표는 대개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매 순간 꿈꿨던 어떤 것들은 어느 순간 삶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습관처럼 또 꿈을 꾸었다. 이런 식이라면 나는 평생 꿈을 좆을 수밖에 없었다. 꿈을 꾸지 말까? 하지만 숨 쉬지 않고 사는 것처럼, 눈 깜박이지 않고 사는 것처럼, 꿈꾸지 않고 사는 건 불가능한 일. 차라리 꿈속에서 살면 어떨까? 언제 올지 모를 날을 하염없이 바라기보다는, 그렇게 꿈꾸다가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을 최대한 만끽하며 사는 것 말이다. 그게 좋겠다. 지금에 집중하자. 하지만 이대로는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꿈을 실행에 옮겨보자. 2년 9개월 전의 다짐이었다.



후회를 남기지 않자 꿈이 바뀌었다

2년 9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하지만 전과는 다르다. 이전 꿈이 미래에 대한 동경이었다면, 지금 꿈은 현재의 완성이다. 예전에는 개척가 정신이 강했다면, 지금은 장인정신이 강하다. 물론 진짜 장인들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진 못하지만 마음가짐은 그렇다는 말이다. 또 다른 무엇을 바라기보다는, 지금 하는 일을 더욱 잘 해내고 싶다. 꼭 일이 아니더라도, 더 좋은 남편이 되고 싶고, 아빠가 되고 싶다.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가족과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 더 신실한 신앙인이 되고 싶다.


내 꿈은 이제 미래가 아닌 바로 이 곳에 있다.


그럴 나이가 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후회를 최대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인듯하다. 무언가  해보고 싶으면 능력이 되는 한 어떻게든 해왔다. 현실을 핑계 대며 안 한 적이 거의 없다. 만약 공부를 안 했다면, 외국회사, 한국회사, 대기업, 중소기업을 모두 안 다녀봤다면, 선배들 눈치는 보였지만 신혼여행을 2주 동안 다녀오지 않았다면, 안정된 직장을 나와 창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잠깐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커피를 배우고 요리를 배우지 않았다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이 중 하나는 분명 과거의 후회로 남았을 게다. 미래의 부담으로 남았을 테고.


물론 매 순간의 선택에 갈등이 없진 않았다.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지'가 대표적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조언도 '잘 생각해라. 나중에 후회할 짓 만들지 말고'이기도 했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에 매이지 않은 덕분에 후회가 거의 없다.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게 되었다. 대개 비교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상대적 우위를 가릴 때 생기지 않던가. 그간 워낙 종횡무진으로 살다보니 이제 딱히 비교할 사람이 없어졌다.



나는 지금 꿈속에 살고 있다

풀이 있고, 물이 있고, 고요함이 있는 곳. 내가 꿈꾸는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몇 시간이 걸리든 기꺼이 수고해야 한다. 설령 길게 돌아가야 하더라도, 나중에 후회할지 모를 지라도 말이다. 이른 아침 커튼을 쳤을 때 마침내 그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마침내 꿈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그런 날은 더 바랄게 없다. 주어진 하루를 최선을 다해 만끽할 뿐.


 얼마 전 다녀온 여행지에서 찍은 이른 아침 풍경 


꿈도 그렇다. 계속 꿈을 살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토록 원하던 여행지에 온 느낌이랄까. 지금이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그런 날. 동편에서 피어난 불꽃이 서서히 온 세상을 밝히면서 시작되는 새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란 생각이 드는 날. 더 바랄 게 없고, 그저 감사히 즐기고 싶은 날. 그런 날이 벌써 2년 하고도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나는 지금 꿈속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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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나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회없는 인생을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네이버 인문 화제의 신간10>  <YES24 2019 여름 교양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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