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목적하는 바가 다르지 않겠나. 따라서 여기서는 편의상 흔히 말하는 성공을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부자가 되는 것 말이다.
성공하면 행복해질까
성공하면 행복할 것 같다. 굶을 일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모두 가질 수 있고, 어디 가서 구차하게 굴 필요도 없을 테니까. 비행기를 타도 대부분 저렴한 좌석을 찾기 위해 몇 달 동안 항공사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는데, 부자는 카드 하나 달랑 들고 공항에 가서 남아도는 비즈니스나 퍼스트클래스 좌석을 결제하면 그만이다. 숙소도 그렇다. 공항에서 리무진을 타고 시내에 있는 아무 호텔이나 가서 남는 방 달라고 하면 된다. 전시회를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도 성공한 이들은 줄을 서지 않는다. 몇십 만 원만 더 주면 되니까. 쇼핑도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신상을 들고 온다. 주차도, 출차도 내가 할 필요가 없다. 살면서 기다리는 시간만 줄여도 얼마나 행복할까. 성공하면 분명 행복할 것 같긴 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은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행복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나르시시스트라 자부할 정도로 행복하다. 살짝 과장해서 너무 행복해서 가끔 가슴이 뭉클할 정도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계기가 있었는데, 경쟁 사회에서 툭 떨어져 나오면서부터 나는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비교할 대상이 줄고 대신 나만 바라볼수록 행복은 점점 빠르게 커가기 시작했다. 벌이는 전보다 줄었고 직함은 아예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통증의 강도를 1에서 5까지 나눈 표를 본 적이 있다. 통증이 클수록 숫자가 크다. 만약 그와 비슷하게 행복의 강도를 측정하는 표가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5점에 체크할 것이다.
성공한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행복할까. 비즈니스는 아니지만, 이코노미석 정도는 탈 수 있어서 행복하다. 스위트는 아니지만, 스탠다드 정도는 묵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뛰어나게 똑똑한 건 아니지만, 어디 가서 내 생각 정도는 버벅대지 않고 말 할 수 있어 행복하다. 훤칠하게 크진 않지만, 평균은 되어서 행복하다. 대작은 아니지만,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은 써봐서 행복하다. 수만 명이 내 글을 읽진 않지만, 가끔 댓글 달아 주시고 공유해 주시는 분이 계셔서 행복하다.
성공하지 않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공하고 싶지 않은가 하면 그건 아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어찌 좋지 않겠나. 지금 누리지 못하는 호사를 누리다 보면 분명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행복에 눈 뜰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사실 때문에 지금 내가 불행해지진 않는다. 따라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다지 간절하게 바라진 않는다.
호스피스 병동을 촬영하여 영화를 제작하신 감독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호스피스 병동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 중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통증 치료만 받는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은 행복할 일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단다. 내일이 불확실한 사람은 오로지 지금에만 집중한다. 병원 앞마당에 핀 들꽃 하나에도 그렇게 행복해할 수가 없단다. 찾아오는 손님 한명 한명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단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영영 만날 기회가 없었을 테니. 지금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가 이 세상 마지막 대화라 생각한다면 어찌 그의 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생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에는 생각보다 행복한 분이 많다고 하셨다.
어쩌면 행복은 들에 핀 꽃 한 송이에서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정확히 나눌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어딘가에 속하게 될 테다. 불행에 속하면 행복해지고 싶어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불행해지고 싶어도 행복에 속하면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고. 다행히 신을 제외하고 그 경계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더 다행인 건 신은 우리에게 그 경계를 마음껏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평하게 가지고 있는 능력. 돈으로 살 수 없는 능력. 자유의지다.
성공의 장벽은 높다. 평생 애를 써도 넘기 힘들 정도로 하늘 끝까지 닿아있다. 반면 행복은 평지에 있다. 심지어 원하면 언제라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기까지 하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다.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할 수 있는 것, 갖지 못한 것보다 가진 것에 집중해보는 거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당신의 자유의지로.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그 길에서 앉은뱅이 꽃이라도 발견한다면, 어쩌면 그날부로 당신도 행복에 성큼 발을 들여놓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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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형 / 프리랜서 작가, 브런치 작가, 기업 블로그 마케터. 나에게 어울리는 인생, 후회없는 인생을 선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나를 찾아가는 생각연습'을 출간했습니다. <네이버 인문 화제의 신간10> <YES24 2019 여름 교양 필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