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들: 한 사람의 어른이 된다

<자화상> 두 번째 이야기

by 서로의 서재


이 영화를 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만큼 이 영화를 어떻게 리뷰할 지, 또 리뷰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거장의 작품이라는 평가가 붙은 영화라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예전부터 파리의 문화에 대해서 관심도 있었고 스스로를 개방적인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안에 있던 유교보이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상과 음악을 활용하는 표현방식에서는 감각적이고 당시 시대상을 잘 담아냈다라는 평가에는 동의하지만 이 영화는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적나라한 표현과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기에 추천하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를 인생 영화라고 꼽는 사람은 조심해야 하는 게 아닐까...싶은 정도로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에는 항상 메시지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런 것들을 찾는 데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이다. 두 시간 가까이 영화를 보면서 유일하게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세 주인공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언행에서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용기를 내어본다.

movie_image.jpg 출처: 네이버 영화


몽상가들은 2003년에 개봉된 영화로 1968년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혁명의 분위기가 파리를 감싸기 시작했을 무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의 급진적인 내용과 분위기를 그나마 이해해 볼 수 있었다.('금지된 것을 금지하라', '모든 권력을 상상력으로'와 같은 문구가 그 예시)


주인공 매튜는 미국에서 유학을 온 영화광이다. 시네마테크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길 나누거나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매튜는 우연히 시네마테크에 모인 인파 속에서 이자벨을 보고 왠지 모를 끌림에 다가간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의 쌍둥이 동생 테오를 만나면서 세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라는 하나의 접점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매튜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화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함께 공유하면서 서로 점차 가까워진다. 영화 속 장면을 따라해보고 영화에 대해 서로의 평가와 가치를 공유하는 등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동시에 그 사람의 추악한 면까지도 바라보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매튜는 기숙사에서 나와 함께 살면서 테오와 이사벨의 관계를 의심한다. 쌍둥이 남매라기엔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목격하면서 점차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한 방에서 나체로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샤워를 하고, 영화 퀴즈를 내서 못 맞추면 서로에게 수치스러울 정도의 벌칙을 주는 등 매튜로선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을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테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샴쌍둥이야. 정신으로 이어져 있는." 같은 문제에 대해 이사벨은 "언제나 내 안에 있어." 라며 그 둘의 끈끈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관계를 알 수 있었다. 이 때 부터 매튜는 사랑하는 이사벨을 하나의 인격체로 독립시키기 위해 그녀를 세상 바깥으로 꺼내어 본다. 하지만, 이사벨에게 테오는 그들이 말한 대로 성별만 다른 같은 인격이자 동일한 사람이었다. 연인인 매튜와의 사랑보다 자신의 분신인 테오로 부터 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모든 환상은 깨어지기 마련이라 했나. 한 달 여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에게 이사벨과 테오의 관계는 들통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사벨은 매튜와 대화했던 대로 자살을 결심한다. 모두가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사이에 함께 죽으려고 하지만 시위대의 돌팔매질로 창문이 깨지면서 테오와 매튜가 일어나면서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파리를 점령한 시위대의 물결로 뛰어든다. 급진주의자였던 테오는 이 물결 안에서 시위대와 하나가 되고자 화염병을 집어든다. 매튜는 이러면 안된다며 그를 극구 말리지만 테오는 이사벨과 함께 경찰들 앞으로 나아가서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들이 진압에 나서면서 영화는 이 노래와 함께 마무리된다.

https://youtu.be/rzy2wZSg5ZM

이제 내가 생각한 각 인물들의 느낌이나 상징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그 전에 원작자의 코멘트를 잠시 읽어보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몽상가들>은 당시 청춘들이 품고 있던 세 가지 유토피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첫 번째는 사회와 정치구조가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적 유토피아이고, 두 번째는 영화에 열광했던 당시의 분위기와 관련된 영화적 유토피아이며, 마지막은 성적인 자유에 대한 열망에 의해 탄생한 섹슈얼 유토피아이다. 이 세 가지 유토피아는 <몽상가들>의 많은 명장면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성세대의 보수적 가치와 정치적 억압에 반발하는 주인공들의 행동은 정치적 유토피아를, 영화 <국외자들>의 루브르 박물관 질주 씬을 따라하는 장면은 영화적 유토피아를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섹슈얼 유토피아는 주로 매튜와 이사벨의 성적 관계들을 통해 보여지는데, 이사벨이 비너스 조각상의 모습으로 매튜를 유혹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비록 이와 같은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라는 뜻에 걸맞게 실현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럼에도 이상향을 추구한 젊은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 길버트 아데어


1.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 이사벨 & 테오


영화를 보는 내내 매튜의 시선으로 이사벨과 테오를 바라보게 된다. 그 중 둘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꼬집는 대사가 있는데 '여전히 아이처첨 군다'라는 점이다. 그들은 이미 육체적으로는 성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이지만, 그들의 정신은 전혀 성숙해졌다고 할 수 없다. 이들이 일련의 사회화를 겪은 사람들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로 이사벨과 테오는 어린아이일 때의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좋게 이야기 해서)로 보인다. 사회의 기준이나 도덕, 규범, 윤리, 보편적 관념 따위는 두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아마 이런 점이 매튜에겐 두 사람과의 만남이 왠지 새롭고 즐거운 것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밝혀지는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이사벨과 테오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들이지만 각자 상징하는 순수함의 종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사벨은 '영원Eternity'을, 테오는 '이상Ideal'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테오는 당시 시대적 배경인 68혁명의 중심이었던 모택동의 사상을 동경하고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혁명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있지만 정작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매튜와 베트남 전쟁과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를 보아도 테오는 자신이 추구하는 분명한 이상을 열망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이사벨은 테오와 함께하는 자신들만의 세상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사람이다. 서로를 샴쌍둥이이자 성별만 다른 같은 인격으로 생각하기에 이사벨에게 테오는 자신의 분신이자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동등한 존재로써 그녀의 가치관 속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목숨 따위 포기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고, 잠에 든 테오에게 계속해서 관계의 영원함을 물어보는 불안한 모습에서 영원함에 대한 강박적인 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사실 나에게도 있었던 모습들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스로가 영원할 것이란 망상과 내가 추구하는 이상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금새 부숴질 정도로 나약하고 허무맹랑한 것들이었으나 적어도 그 짧은 순간 동안에는 나에게 당연하고 중요한 것들이었다. 마치 모든 걸 바꿀 수 있을거라 믿었던 68혁명이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끝이 나고 그 당시 세대들이 지금의 기성 세대가 되어버린 것처럼 한 순간의 불꽃놀이 같은 닿을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2. 조화로움에 대한 강박, 매튜


매튜는 이사벨 & 테오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다. 두 사람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매튜에게는 따라야 할 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현실에 대한 순응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매튜는 이사벨과 테오의 아버지 앞에서 '모든 것이 조화로움'이라는 걸 라이터 하나로 보여주는데,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매튜이기에 이사벨과 테오에게도 자신을 맞춰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 자신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미성숙한 정신을 일깨워 줄 수 있었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매튜는 테오와 매번 취향이 갈리는 사람이었다.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정도로 영화와 음악에 있어서 취향이 확고하게 갈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는 곧 매튜가 이사벨 & 테오에게 있어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유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완벽한 관계를 위협하는 외부세계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절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둘 사이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조화로움은 얼핏 듣기에는 좋은 것처럼 보여지지만, 조화롭다라는 건 결국 어느 한 쪽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변형시키고 원래 갖고 있던 것들을 버리는 등의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는 작업이다. 결국 이사벨 & 테오에게 매튜는 그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존재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의 관계와 상황을 자신이 '옳다'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무리 비정상적인 것이라 해도 그 판단 또한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한 것에 불과하다. 매튜에게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관계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보려 했다는 것이다. 이사벨을 사랑했기에 당연한 선택이었겠지만, 사랑하기에 올바르게 인도하고 싶다는 생각 기저에는 연인에 대한 소유욕과 우정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매튜의 모습은 가장 최근의 내 모습과 닮았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고 의심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위험하고 폭력적인데도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선의로 포장된 폭력도 좋은 것일까. 타인에게 까지 나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건 결국 자기자신을 좀먹을 뿐인 망상에 불과하다. 각자의 삶을 짊어내는 데 있어서 나 하나 간수하기에도 벅찬 게 현실이니까.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3. 그렇기에 '몽상가들'이라고 부를 수 밖에.


결국 영화 속 주인공들 모두 각자만의 유토피아를 쫒는 몽상가들이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영화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현실에서의 행동들이 영화를 그대로 따라할 때 영화 속에서 영화가 겹쳐지는 장면들이 있음)이를 통해 잠시나마 현실 속 자신들이 일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자신들의 삶도 영화와 음악과 다를 바 없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영위하는 젊음과 삶이 영원할 것이라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원함이 당연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기보단 자신들의 아늑한 집과 방에서 고급와인들을 마시며 영화와 사상에 대해 떠들기만 할 뿐인 모순적인 모습만 되풀이 한다.


당연하지만 받아들이긴 힘든 사실은 모든 게 영원하진 않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끝이 났을 때야 비로소 그 모든 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우리에겐 그래서 삶의 지향점과 더불어 현실적인 계획과 대안이 필요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신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도 포기하고 살아갈 순 없다. 이상만 가득할 뿐인 삶에는 삶을 지탱할 현실이, 현실만 가득할 뿐인 삶에는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이상이 부재한다.



movie_image.jpg?type=m665_443_2 출처: 네이버 영화


No, je ne regrette rien. 직역하자면 '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라는 뜻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는 그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감내해야 하는 현실의 무게도 힘들긴 하지만 기꺼이 짊어질 수 있다. 선택에는 책임이, 책임에는 권리가, 권리에는 의무가 수반된다.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에 용인되는 것들은 결국 '청춘은 철 없는 존재'라는 평가가 깔려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묻지 않는다.



그 순간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더 많은 순간들을 경험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다만, 항상 본능과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 때로는 잠깐의 쾌락과 즐거움을 희생해가며 성숙해질 준비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나약해진 우리 앞에 나타나 '당신은 무능력한 존재'라는 잔인한 선고를 내리고 만다. 그런 순간을 마주했을 때 무너져내리고 싶지 않다면 자기 앞에 놓인 현실과 삶을 마주해야만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만 한다. 사회로부터의 냉소적인 시선을 견디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끊임없이 입증해야만 한다. 이 과정에서 희생은 필수적이다.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겠다는 건 망상이다. 언젠가는 무엇을 포기할 지 선택해야만 한다. 한 사람의 어른으로써.


https://www.youtube.com/watch?v=sdA4A7qo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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