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8-14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개역개정)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새번역)
저 두 문장을 화면에 띄어둔 채 오전이 다 지나고 3시가 됐다. 어려운 말은 아닌데 왜 뭐가 이해가 안 될까. 뭔가 그냥 막혀있다. 사랑의 빚을 진다는 게 무슨 말일까. 누가 날 사랑해 주면 내가 그 사람에게 빚진 거라는 말이겠지.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내게 빚진 거다. 내가 꿔준 거다, 대가 없이 마구 퍼준 거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받을 때뿐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의 빚을 지는 거라는 걸. 왜? 사랑할 대상이 돼 주었으니까. 사랑할 수 있는 영광과 기회를 주었으니까. 결국 사랑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이래저래 빚진 자이다.
그렇다면 나는 빚진 자인가. 안타까운 것은 내가 사랑을 받을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줄 줄도 모른다. 인간의 사랑을 믿지 않으려 애쓴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국 자기 유익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이다. 고모가 우리에게 (외형적으로) 잘해주셨어도, '아빠가 불쌍하니깐 우리한테 잘해준 거지 우리를 사랑한 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말씀을 듣고 인간의 속성을 더 이해하게 된 후에도 '고모가 남을 도와주는 것에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만족감 때문에 우리한테 잘해준 거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그 만족감 때문에라도 아빠 때문에라도 잘해주신 것이 그분 나름의 사랑이라고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 아빠가 고모와 우리 사이에서 눈치 보지 않게 해 주는 게 사랑인 걸 모르고, 그저 고모가 우리를 도와주게 끄름 자기가 투정을 부리거나 난리를 치는 게 우리를 위하는 사랑이라 여긴 걸 왜 아빠의 사랑으로 보지 못할까. 엄마가 빼앗겼다는 우리를 다시 찾으러 오지 않은 것이 아빠랑 살면 더 누리겠거니 하고 놔둔 사랑이란 걸 머리론 알면서도 왜 풀리지 않을까.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불완전하기에 사랑은 믿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살기 위한 나의 방어기제였다. 이러니 나는 사랑을 줘도 모르는 싸가지가 없는(좀 더 고급진 표현이 없을까) 아이가 돼버렸다. 아니, 됐다. 수동이 아닌 자발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지 않고선, 나의 이 굳은 가치관이 변화하기는 힘들다. 결국 예수님이다. 언제나 결론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줄 안다면 부모님의 서툰 사랑도 기꺼이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매일 이 부분에 대해 묵상해 봐야겠다.
오늘 적용할 점 : 건강한 사랑을 못 받았다고 나도 자녀들에게 사랑을 못주겠다고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나 역시 부모님처럼 건강한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인정하고 오늘 하루 부드러운 마음과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겠습니다. (오늘은 학원가는 것도 거의 없어서 하루종일 붙어있는 날....)
마지막 문장을 쓰자마자 둘째가 집에 와서 손발도 안 씻고 침대에 올라가고 햄버거를 먹고 왔는데 모자랐다고 하나 더 시켜달란다. 그리고 외출 전 티브이를 1시간 넘게 보고 나갔는데 들어오자마자 또 무슨 영상을 틀어달란다. 나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적용하자고 다짐한 지 3분도 안 돼서 짜증이 확 솟구치는구나..